캘거리 이민의 선구자 -김창영박사

캘거리 한인 역사는  1965년에  김창영 박사님이 캘거리 대학에 물리학 교수로 부임 하면서 가족 ( 부인, 아들, 2 딸 ) 과  함께 캘거리에 정착 하면서 시작 됐다. 그이후 1967 년에 몇가정이 더해 젔고 1968년 4월 에 우리가족이 왔을때는 어른들과 아이들 까지 다 해서 30여명이 전부였다.

김박사님은 1957년에 워싱톤 대학에 유학 하시어 박사학위를 받으셨다. 처음 부임한곳은 알래스카 앵커래지 대학이다. 이곳에서 물리학을 가르치시다가 캘가리 대학으로 오신것이다. 캘거리에 이민 와서 새로운 삶을 시작 하는  한인들은 김박사님의 도움을 받았다. 입이 있어도 말을 못하는 사람을 위해서 말할수 있는 입이 되여 주셨고 귀가 있어도 듣지 못 하는 사람을 위해서는 들을수 있는 귀가 되여 주셨고 발이있어도 가지못하는 사람을 위해서는 갈수있는 발이 되여 주셨다.

한국사람 입맛에 맞는 쌀은 일본 할머니가 운영하는 구멍 가게에서 살수있다는것을 알려 주셨고 반찬거리는 중국사람 가게에서 살수 있다는 것을 알려 주셨다. 뿐만 아니라 매주 주말이되면 교민들은  김박사님 댁에 모여서 한국말로 떠들면서 일주일동안  새로 시작 하는 캐나다 이민 생활 에서 받은 스트레스를 풀곤 했다. 김박사님 댁은 교민들에게 없어서는 안되는 안식처요 정보를 교환 하는 중심이 됐다.

이렇게 생활하던중 1967년 12월에 백선엽 대사님의 권유로 성인 10명 과 아이들 5명으로  한인회를 시작 했다. 초대 회장에 김창영 박사가,  총무에 최병기 씨가 선출됐다. 이렇게 캘거리 한인회는 성인 10여명으로 시작해서 마치 가족과 같은 분위기로 운영됐다. 예를들면 이때 한국에 가족을 놔두고 남자 혼자 이민와서 살고 있던 사람이 2 사람 있었는데 이분들이 가족을 초청 했을때 교민들은 한번도 만나본 일이 없는 사람들이 오는데 비행장에 다 같이 마중 나가 기도 했다. 이렇게 시작한 한인회가 지금은 2만 여명에 달하는 한인회로 성장했다. 캘거리 한인회는 금년이 44년 되는해다. 44년을 지내오면서 이해 관계로 말다툼을 하거나 패 싸움을 한일이 한번도 없는 모범 적인 한인회 이다. 이렇게 모범적인 한인회가 되기 까지는  처음 시작했을때 가족과 같은 분위기로 운영 한것이 크게 영향을 준것으로 생각된다.

현재 캘거리 한인회는 40 대 회장에 이르렀고 한인회에서 한 사업중에 특기할만한 일을 열거하면 다음과 갇다.

  1. 1968년 8월 – 백선엽 대사님이 영사 한분과 같이 캘거리 교민을 만나기 위해서 처음으로 캘거리를 방문 하셨다. 2일간 계시면서 한인회장 집에 모여서  교민들과 얼굴을 맞대고 앉아서 거리감 없이 허심탐해하게 대화를 나누며 좋은 시간을 가젔다.
  2. 1969년 7월 – 한인의 밤을 개최했다. 이 행사에 락킹햄 ( Rockingham ) 장군을 모실수 있었던일을 영광으로 생각 한다 락킹햄  장군은 6.25 전쟁당시 캐나다군 1개 여단 병력을 이끌고 한국을 위해서 최 일선에서 싸우신 장군 이시다. 1952년 4월에 캐나다로 귀국 하셨고 귀국후 캐나다군 총사령관으로 계시다가 1966년 군에서 전역 하셨고 뱅쿠버 나네이모 ( Vancouver Nanaimo ) 섬에서 노후 생활을 즐기시다가 1987 년 노환으로 타게 하셨다.
  3. 1971년 7 월 – 캘거리 시에서 매년 큰 축제로 행하는 스템피드 퍼레이드 ( stampede parade ) 에 처음으로 참가했다. 칼가리 교민들이 모두 합심하여 거북선을 만들었다. 낮에 일하는 사람은  일을 마치고 저녁 시간에 거북선 만드는데 동참 했고 야간에 일 하는 사람들은 낮에 와서 거북선을 만들었다. 이렇게 전 교민들이 합심해서 멋있는 거북선이 만들어 젔고 스템피드 퍼레이드에서 전 캘거리 시민들에게 우리의 자랑거리인 거북선을 선보이게 됐다.
  4. 1983년 9월 – 칼 ( KAL ) 기 폭파 규탄 대회를 시청앞 광장 에서 가젔다. 이 대회는 한인 뿐만 아니라 베트남 사람 그리고 체코 사람들도 동참했고 이대회를 통해서 쏘련의 만행을 만 천하에 알리고   또 다시 이런일이 일어나지 않기를 바라는 마음에서  대회를 가젔다. 대회를 마친후 시가 행진을 했다.
  5. 1988 년 2 월 – 동계 올림픽 을 돕기 위한 한인 후원회를 만들었다. 후원회장에 김창영 박사를 선출했고 후원회장은 봉사할 대상을 관람객을 위한 안내, 영접, 응원,통역,교통,숙박, 의료,홍보. 로 정하고 각 분야에서 봉사 활동할 사람을 모집하여 올림픽 기간 (  1988년 2월 13 – 2월 28일 ) 동안 관람객을 불편없이 잘 관람 할수 있도록 안내를 했고 선수들 에게는 최선을 다해 싸울수 있도록 온 교민이 단합하여 응원을 했다.
  6. 2004년 8월 – 한인의 날을 공식적으로 정하고 캘거리 시에 등록을 했다. 매년 8 월 15일 전 토요일에 Shaw Millennium Park 에서 한인의날 행사를 개최했다. 시의원, 캐나다인 대한민국 명예 영사, 밴쿠버 에서 총영사 등 인사들을 초청 하여 8.15 광복절 행사와 한인의날 기념식을  동시에 성대히 거행했다. 다음으로 준비한 태권도, 검도 같은 무술 시범, 사물 노리, 봉산 탈춤 과같은 전통 공연과 어린이 사생대회,배구 토너맨트, 장기 및 바둑 대회 을 개최하고 마지막 순서로 Star King 이름을 붙인 장기 자랑 으로 막을 내렸다. 해를 거듭 할수록 한인날 행사 프로그램도 다채로와 젔다.  금년이 한인의 날을 시작 한지 9 회가 된다.
  7. 2010 년 – 한인회관 이전. 그동안 개인 주택과 같은 협소한 곳을 한인회관 으로 사용 하다가 800 여명 수용 할수있는 큰 건물을 구입 했다. 건물  1 층 에서는 한인회,노인회,여성회, 등 한인 단최들의 모임을 갖일수 있게 됐고 배구, 농구, 탁구 같은 실내 운동도 할수 있게 됐다. 또 한쪽 옆에 식당도 세를 주고 있다. 2층에는 6개의 사무실이 있다. 새 한인 회관으로 인해서 캘거리 한인단최들이 활동 하기에 편리해젔고 명실 공히 한인회 면목이 서게 됐다.
캘거리 한인 단체 이름
민주평화통일 자문 위원회.캘거리 한인회.캘거리 실업인 협회.캘거리 한인 노인회.캘거리 한국 노년 건강 협회.알버타 한인 여성회.캘거리 교역자 협의회.갤거리 기술자 모임.캘거리 노년 대학. 캘거리 한인 장학 재단. 캘거리 라이온스 클럽.캘거리 한인 야구 동호회. 캘거리 한인 골프 협회.  캘거리 한인 문인 협회.   캘거리 한인 산학회  캘거리 한인 세탁 협회. 캘거리 한인 축구 협회. 캘거리 한인 학교. 캘거리 한인 참전 용사회. 캘거리 ROTC  회. 한국 언어 / 문화 교육원.
(제2대 캘거리한인회장 양재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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