대한민국이 멈춰섰다. 지난 주말 주요 거리와 매장, 공항까지 텅 비었다.
코로나19가 전국을 덮친 가운데 대구·경북지역을 중심으로 확진자가 무더기로 나오면서 사실상 ‘청정지역’이 없어졌다. 국민 불안이 높아지면서 여행은 물론 외출도 자제했다. 공항과 역사는 승객이 크게 줄어 한산했다. 명동·코엑스 등 평소 주말이면 사람들로 분비던 번화가도 유동인구가 절반 이하로 줄었다. 삼성전자는 구미 공장 일부 생산라인을 멈췄다. 피해 확산여부에 따라 주요 기업 생산과 서비스업의 추가 중단 가능성도 커졌다.
23일 오후 9시 현재 코로나19 확진자는 602명으로 집계됐다. 사망자는 6명으로 늘었다.
확진자가 계속 증가하고 있어 정부와 산업계가 모두 촉각을 곤두세우고 있다. 주요 유통 매장을 넘어 제조현장으로 피해가 확산될 우려도 커졌다.
주말 중국과 일본으로 오가는 비행편이 대다수인 김포국제공항은 직격탄을 맞았다. 입국장 게이트가 있는 1층 홀은 복도 전체에 300명 남짓한 사람들이 지나다녔다. 마스크를 착용하지 않은 사람도 간혹 보였다. 2층 출국장도 사정은 마찬가지였다. 출국장 게이트 주위에는 20명 정도만 지나다녔다. 대합실 의자는 절반 이상 비어있었다.
출국장 게이트에서 근무하는 한 직원은 “출국하는 사람 수가 절반 이하로 줄었다”면서 “국내선도 주춤하다가 대구·경북에서 확진자가 늘면서 사정은 마찬가지”라고 말했다.
종합안내소, 환전소, 식당, 커피숍도 마찬가지다. 3층 식당가에는 점심시간임에도 불구하고 손님이 없었다. 40석이 넘는 한 식당은 10석 정도만 손님이 자리하고 있다. 이 중 서너 테이블은 명찰을 목에 건 직원들이었다.
한 항공사 부기장은 일본 나고야에서 비행을 마치고 왔다고 했다. 그는 “보통 만석이었는데 오늘은 160명 정도를 태웠다”면서 “며칠 전 싱가포르에서 올 때 30명뿐이었다”고 전했다. 일본 비행은 4~5회에서 1~2회로 운항이 줄었다.
한 공항버스 티켓 판매직원은 “이용객이 주로 외국인이었는데 지금은 찾는 사람이 거의 없다”면서 “매출이 60~70% 이상 줄었다”고 말했다.
공항 면세점도 이용객이 현저히 줄었다. 그나마 공항을 찾는 이들도 여행이 아닌 업무상 필요한 출장자들이 주를 이룬다. 이들은 여행객에 비해 쇼핑 비중이 낮아 매출 역시 급감했다.
서울시 강서구의 한 대형마트는 매장 밖에서부터 카트와 손을 소독하는 등 평소와 다른 모습을 보였다. 다만 매장 내부로 들어서자 예상과 달리 많은 손님들로 북적였다. 하지만 이는 식료품 매장에 한정됐다. 매장을 찾은 대부분이 생활에 필요한 식료품을 사기 위해 대형마트를 찾았다.
기차역과 쇼핑거리도 한산하다. 지난 22일 낮 12시를 넘긴 서울역 대합실. 여느 주말이면 사람들로 북적였을 이곳도 마스크를 쓴 승객들 사이로 빈자리가 많았다. 긴 줄이 늘어섰던 바로 옆 패스트푸드점도 한적함이 맴돌았다. TV를 바라보던 시민 일부가 자리를 뜨자 코로나19 관련 긴급 뉴스만 대합실에 퍼졌다.
텅 빈 매표소에선 출발까지 10분 남은 동대구행 KTX 승차권도 여유롭게 구매할 수 있었다. 주말 이틀 전이면 대부분 매진됐던 평소와는 사뭇 다른 분위기다. 직원은 “지난주보다 유동객이 더 준 것 같다”며 “동대구나 대구행 일반열차 모두 남은 좌석이 충분하다”고 했다.
다른 열차도 마찬가지였다. 예매 홈페이지에도 빈자리만 가득했다. 코레일에 따르면 코로나19 확진자 수가 잠시 소강상태를 보인 지난 주말(2월 14~16일)에도 KTX 이용객이 전년대비 25.3% 감소했다.
시내 쇼핑거리도 분위기가 심상치 않다. 중국인 관광객으로 발 디딜 틈 없던 명동 쇼핑거리도 얼어붙었다. 소공동 롯데백화점과 면세점도 활기를 잃었다.
6층에서 만난 골프·스포츠 매장 직원은 “시즌 특수에도 손님이 워낙 없어 체감상 근무시간이 두 배는 늘어난 듯하다”며 “행사 때는 밥 먹을 시간도 부족한데 요즘엔 돌아가면서 여유 있게 먹다 쉬다 온다”며 쓴 웃음을 지었다.
평소엔 몰려드는 고객들로 잔뜩 헝클어졌을 이벤트홀 매대 의류들도 이날은 가지런히 진열된 상태를 유지했다. 위층 면세점으로 올라가자 보따리상은 자취를 감추고 중국·일본인 개별관광객 일부만 눈에 띄었다. 그마저도 손에 꼽을 정도다.
명동거리 상인들은 위기를 피부로 체감하고 있다. 한 로드숍 매장 주인은 “한국인도 없고 중국인도 없다”면서 “한 달 새 매출이 절반 넘게 줄어 임대료를 건지기도 벅찬 상황”이라고 하소연했다.
그러면서 “개학을 앞두고 아르바이트 직원 몇 명이 그만뒀는데 후임은 구하지 않고 있다. 당분간은 손을 줄여 인건비 부담이라도 덜어낼 계획”이라고 말했다.
코엑스 랜드마크 ‘별마당 도서관’도 명성에 못 미쳤다. 평소 공연과 강연이 활발했을 무대 자리엔 2~3명만 앉아 휴식을 취하고 있었다. 코엑스 측은 2월 강연 및 공연 프로그램을 모두 연기했다. 실내 데이트를 즐기는 연인도, 사진을 찍는 관광객도 없었다.
김정희기자 jhakim@etnews.com