초기 이민 일본 수산회사서 만난 한국여성 성희롱 사건

박영길 6.25참전 유공자회 자문위원

먼저 온 동생의 도움으로 1975년 8월 밴쿠버로 이주했다. 나이 47세 였고 건강했다. 그런데 막상 이민 생활로 접어들자 직장 잡기가 여의치 않아 내가 왜 이민을 택했냐며 후회를 하기도 했다.

생사를 걸고 세상과 부딪쳐야 했다. 며칠 동안 일자리를 찾으려고 밴쿠버 다운타운 나가 무슨 묘책이 없을까 하고 묵상하며 거닐다가 우연히 한국에서 수산물 교역으로 교제를 했던 일본인 친구를 만나게 됐다.

내 사정을 듣고 난 일본인 친구는 밴쿠버에 자신의 친구가 해외법인을 설립하고 활발하게 진행하고 있으니 함께 방문해 나를 소개시켜 주겠다고 했다. 나는 영어는 못 하지만 일본말은 마음대로 구사할 수 있었기에 그 즉시 채용이 되었다.

직책은 플랜트매니저였다. Aero Trading이란 그 회사의 본사는 일본 도쿄에 있었고일본 전체를 통하여 세 번째로 거대한 수산물 회사였다. 본사 사무직 사원만 200명이 넘을 정도로 세계 곳곳에 지사와 공장을 소유하고 있었다.

밴쿠버에서 BC주에서만 생산되는 연어 (Sock Eye Salmon)과 청어를 납품받아 입하시키고 냉동 저장한 뒤 매일 작업 양만큼 출하시켰다. 작업은 일본인 현지 사장의 지시에 따라 수작업으로 진행되었다.

근무하는 직원은 남자 20명과 여자 150명이 하루 종일 바쁘게 가공업무를 처리하는데 물량이 많을 때는 야간 작업까지 있었다. 내 일은 직원 채용과 업무 감독이어서 매우 분주하게 일을 해야 했다. 남자 종업원들은 주로 실어나르는 일을 했고 여종업원은 움직이는 벨트 작업대에서 채란 작업을 했다. 한국 여직원들은 대부분 주부들이었는데 타국 여성들 보다 월등히 일을 잘했다.

어느날 30대 여직원이 갑자기 나에게 달려 와 “저 당장 회사 그만두겠어요!” 하며 몹씨 화가 난 표정으로 항의를 했다. 자초지종은 다음과 같았다.

“글쎄 사장이랑 자가 오늘 두 번이나 내 등 뒤에 박싹 닥아서서 입으로 담배냄새를 풍기며 허리를 만지작거리며 “Good Work” 어쩌구 하더라고요. 너무 역겨워 참기 힘들었습니다. 남편 수입이 빠듯해 생활에 보낼까 하고 허드레 일을 하고 있는데 사람을 무시해도 분수가 있지, 너무 기분 나빠 그만두겠습니다”.

일본인 사장이 친구 소개를 받고 나를 채용한 것은 감사하게 생각하지만 이건 민족간에 문제이며 성폭력에 관한 인권 문제여서 가슴 속에서  가슴 속에서 불이 올라 올라 오지 않을 수 없었다.

나는 1928년생이어서 소년시절을 일본의 식민지 시대에 살았으며 못된 일본의 만행을 자주 보았다. 이 기회에 이 일본인 사장을 혼내줘야 다 생각하고 실내 방송을 통해 일어난 일을 설명한 뒤 그 여직원은 오늘 처리하지 못한 잔량을 냉동고에 입고시키고 그냥 귀가 하라고 지시했다.

덧붙여서 그날 잔여 업무 임금은 내가 알아서 처리해주겠으니 다시 연락할 때까지 집에서 대기하라고 말했다. 그리고는 사장실로 뛰어가 “너희 일본인은 남의 부인 허리를 만지며 좋아하는 인종들이냐” “이 개만도 못한 인간들”이라며 보통을 쳤다.

그러자 사장은 벌벌 떨면서 “용서를 빈다”고 말했다. 그러나 나는 “그럼 내가 너희 마누라 허리 좀 만져 보고 용서를 빌어주마”라고 말했다. 때마침 회사에 연어를 납품하던 일본인이 회사의 방문하고 있었는데 일본인 사장과 납품대금을 제대로 못받아 좋지 않은 사이였다.

일본인 사장 여직원 성희롱에 격분해 따지다

나는 속으로 잘됐다 싶었는데 내일 일본 영사관 외관이 함께 가서 협의하자고 했다. 다음날 일본 영사관에 들어서자마자 총영사 면담 요청을 했는데 일본 출장 중이니 대신 부영사가 연락을 취해 신속하게 처리해 주겠노라고 했다.

이 사건은 일본인이 저지른 국제적인 사건이고 소문이 나면 수습하기 곤란할 정도로 망신을 당할 수있어 영사관이 본국 외무부에 상황을 긴급 타전하는 것같았다.

나는 만약 당신네들이 차일피일 시간을 끌면 내가 직접 일본에 가서 온론기관과 수산업계에 연락하여 일본인이 외국에서 회사 운영을 하면서 직원들에게 추잡한 행동을 취했다는 것을 알게 할 것이라고 말하고 영사관을 나왔다.

상황이 심각했는 지 일본 본사 사장이 밴쿠버로 날아와 나에게 면담을 요청하여 만나서 설명했다. 자초지종을 들은 사장은 해결 방법을 말해 달라고했다. 사장 표정을 보니 돈으로 해결하려는 눈치였다. 나는 잠시 망설이며 사장도 혼내주어야 한다는 생각을 했다.

아니나 다를까. 비서를 시켜 봉투 대금을 두 개 를 건네는 것이었다. 하나는 성희롱 피해자인 여직원에게 주고 또하나는 나에게 준가고 하기에 속으로 “정말 이 사람들이 한국인을 무시하는구나” 생각했다.

그 즉시 나는 “회장님 당신도 돈이면 모든 일을 해결할 수 있다는 사고방식을 갖고 있다면 크게 잘못된 것이에요. 회장님이 제일 먼저 해야 할 일은 정신적으로 피해를 입은 부인에게 머리 숙여 잘못을 빌고 다시는 이런 일들이 발생하지 않도록 부하직원을 지시감독 해야 하는 것이 아니겠소. 이런 돈은 필요 없으니까 가지고 가시오. 그리고 나는 이 회사를 당장 그만 두겠고” 라고 말하곤 나와버렸다.

이 일이 삽시간에 전 회사원들의 알려졌고 모든 사원들이 감동의 눈물을 흘리며 내게 찬사를 보냈다. 물론 그 여직원은 뒤에보상을 받았다. 그 후 가끔 내가 회사를 방문하면 새로 임명된 사장과 일본인 직원들이 전부 기립하여 인사했고우리 한국인 여직원들에게도 아주 친철하게 대우해주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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