합기도 10단의 캘거리 애환- 검무관 윤기철관장의 도전

1979년 박대통령이 서거하고 나라가 정신없었던 시절을 겪었다. 그때 갤러리에 있는 동생 (윤 병욱)이 ‘왜 한국에 있느냐? 캐나다에 와 보라”고 해서 1980년 캘거리로 왔다. 캘거리에서 여러가지 시범도 모이고 활동도 해 보았는데 너무 춥고 눈도 많이 오고 해서 그냥 한국으로 다시 돌아갈까 하는 생각을 했다.

 그런 생각을 하고 있을 때 캐나다대사관이  6개월을 줄 테니 한번 진지하게 생각해 보라고 했다. 이런저런 생각을 하다가 한국에 나가보니 전두환 장군이 대통령이 되어 있었다. 그래서 마지막으로 무술인 심사를 봐주고 1981년 8월 캐나다로 건너왔다. 그 때 44세였다.

 애들이 큰아들이 7살 작은아들이 새 살이었는데 아이들 위해서라는게 이민결정의 큰 요인이었다. 

처음에 노스웨스트 지역예서 합기도 검무관을 시작했다. 그런데 동네가 너무 불량하고 여러가지로 좋지 않았다. 그래서 사우스웨스트 킬라니 지역으로  옮기게 되었다. 그 장소는 지금 17 애비뉴 맥도날드 근처였다 

 당시 캘거리엔 무도장이 4, 5 개 정도 밖에 없었다. 지금이야 곳곳에 태권도 가라테 유도 도장이 있다. 도장을 새로 오픈하긴 했는데 그때는 인터넷도 SNS도 없어 도장을  홍보 할 방법이 마땅하지 않았다. 오로지 신문에 내는 것만이 유일한 홍보수단이었다.  크레딧 카드도 사용하지 않아 대부분 현금이나 수표를 사용하던 시절이었다.

 입소문이 나서 수련생들이 많이 오기엔 시간이 걸리니 뭐라도 해야 했다. 도장이 9시쯤 끝나면 침을 놓으러 갔다. 일하려 갈 땐.자동차에 클린턴 이스트우드가 나오는 A Few Dollar More (석양의 무법자} 영화 주제곡을 틀어 놓고 일하러 갔다. 그 먼 길을 가서 침과 뜸을 놓고 돈 놓고 번 돈으로 도장 렌트비를 내고 버텼다.

 그렇게  한 1년 정도 굉장히 고생했다. 도장 홍보를 위한 시범을 자주 다녔는데 심지어 맥도날드에 갈 때도 있었다. 아마 그런 것까지 보인 사람은 나밖에 없을 것이다.

.마다루프 도장 잘되었는데 화마가 덥쳐

여기서 10년 동안 운영했고 다시 마다루프로 옮겼다. 거기서 굉장히 잘 되었다. 규모도 크고 공간도 넓고 그런데 문제가 터졌다. 불이 난 것이다 내 실수는 아니었다. 1층 가게에서 불이 난 것이 2층으로 옮겨붙은 것이다.

 모두 타버린 도장이 들어가니 말문이 막혔다. 내가 아끼는 많은 트로피와 자료 사진들이 불타 사라졌다. 보험은 들어있었지만 보상금을 충분히 받는 것도 쉽지 않아 좌절감을 맛보야했다.

 어떻게 해야 하나 막막했다.

 그런데 구석에 타지 않은 물건이 하나 보이는데 그것은 금고였다. 불에 견디며 남아 있었다. 그 안에 가장 중요한 자료들이 들어 있었다. 적지않은  원본자료 특히 증명서였다. 현재 도장에 있는 자료들은 그때 금고 안에 있던 것과 개인적으로 소장하고 있었던 자료이다 

그래도 포기하지 않고 2006년에 현재 도장 위치(4620 16Ave NW)로 이사를 오게 된 것이다 그때 내 나이가 69 3인데 아들이 “아버지 이제 그만 하세요”라고 말했지만 “구르는 돌에는 이끼가 끼지 않는다”는 명언처럼 건강이 허락하는 한 일을 계속해야 한다고 생각했다.

스팸피드  시범행사에 엄청난 갈채 받기도

지난 2009년 한인사회를 대표하여 라이온즈봉사상을 받았다.

 이곳 캘거리에서 여러가지 추억들이 많지만 그중 하나는 1985년 스탬피드 행사였다. 그때 3만 8천 명이 모였는데 그 당시로선 대단한 인원이었다.때 행사중 하프타임에 시범 행사를 했다. 당시 참여한 시범단이 76명으로 그 인원이 모두 공중을 날아서 차를 뛰어넘고 했더니 모임 관중들이 깜짝 놀라 박수갈며 엄청난 박스갈채를 보내주었다. 그때 나는 진검으로 사과 자르는 시범도 보여주었다. 

그 전인 1983년 웨스턴 호텔에서 시범을 보인 일이 있었는데 얼마나 반응이 좋았는지 그 다음 주 신문에 맨 첫 페이지에 전면으로 기사가 나왔다. 그 외에도 수많은 많은 행사에서 시범을 보였는데 캐네디언 아시안 교민 가리지 않고 어디서든 불러 주면 달려가서 행사와 시범을 시범을 보였다 

이민오기전  한국에서  청와대 라든지 군부대 경찰 등 공공 기관의 무술을 많이 지도했는데 여기 캐나다에 와서도 그런 기회를 많이 가질 수있었다.  밴쿠버 버나비에서는 경찰을 대상으로 합기도 호신술 교육을 했다. 캘거리에서도 Millitary Police와 Calgary City Police 소속의 많은 사람들을 가르쳤다.

그런데 그것이 단체로 하는 교습이 아니라 경찰 중에서 개인적 필요로 무술을  배우는 사람들이 있었다. 성심껏 가르쳤고 그들의 반응도 매우 좋았다.경찰뿐만 아니라 형무소에서 죄수들을 관리하는 사람들도 가르쳤다.

 언젠가 우리 합기도가 Calgary Police와 공공기관의  주요 과목으로 선택되는 날이 오기를 바라고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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