코리아 알버타 저널 발행인 안길웅
필자에게는 캐나다에서 태어나서 자라 결혼한 두 딸이 있습니다. 큰 딸은 아들이 두명, 작은 딸은 아들 두 명에 딸이 한 명 있습니다. 비꿔 말하면 손자 4명에 손녀가 1 명 있는 셈이지요. 매주 금요일 저녁 한글 학교에 가는 것을 손 꼽던 꼬마들이 이제는 엄마가 되었다는 사실은 필자인 제가 그 만큼 오래 캐나다에서 살고 있다는 뜻이라는 생각도 듭니다.
두 딸들이 주일학교 어린이들을 보살펴 주던 시절, 어느 날 저녁 식탁에서 두 딸들이 입을 모아, “아빠, 우리 교회에 새로 오신 연세가 많으신 그 분, 상당히 지식이 많은 분 같아요. 저희들과 대화를 나누면 무슨 내용이든지 잘 이해 하시고 또 저희들 귀에 쏙 들어 오도록 말씀도 해 주세요. 아빠는 새로 오신 그 분 모르세요?”
“우리 교회에 새로 오신 분이라고?”
“예! 아빠도 아시는 분일텐데..” “응, 그래…, 영어도 잘 하시고?” “그럼요! 영어도 잘 하시고 저희들이 쉽게 알아 들을 수 있도록 귀에 쏙 들어 오도록 말씀도 잘 하세요.”
“그럼 우리 교회에 새로 오신 분이시겠네?” “예, 맞아요. 아빠도 아시는 분이실텐데…”
다시 말해 상대방의 눈 높이에 맞추어서 대화를 하시는 분이라는 뜻 같았습니다. 어린 아이들과 대화 할 때는 그 어린 아이들의 눈높이에 맞게, 또 연세 높으신 분들과 대화를 나눌 때는 또 그 높이에 맞추실 줄 아는 분이라는 뜻 같았습니다. 그러니 그 당시 고교생인 필자의 두 딸들과 영어로 대화를 나눌 때도 눈 높이를 본능적으로 잘 가늠질 하셨겠지요.
두 딸들은 왜 같은 교회에 다니면서 아빠는 그런 분을 모르시냐는 눈치였습니다. 교회 친교시간에 우연히 그 분과 부딪쳐 인사를 나누며 처음으로 대화를 할 때 역시 딸들이 말했던 것 처럼 상대방의 말을 경청하고 적절한 대꾸도 잘 하시는 분이라는 것을 금방 느낄 수 있었습니다.
그 분의 장례식에 참석하러 멀리서 온 아들과 얼핏 조문인사를 주고 받을 때도 부전자전이라더니 필자와 잠깐 몇 마디 대화를 나누는 동안에도 역시 눈높이를 맞추는 것을 느낄 수 있었습니다. 군대식으로 말한다면 영점 수정이 잘된 총을 지닌데가다 가늠새를 정조준 하여 격발을 순조롭게 잘 줄 하는 명사수 같았습니다.
단 하나인 필자의 6살 된 손녀가 하는 짓을 보면 2명의 오빠들과 두 명의 남자 사촌들 가운데 자기가 유일한 손녀이기 때문에 가족들 모두가 자기에게 더 관심을 갖고 있다는 것을 본능적으로 감지하고 있는 것 같습니다.
며칠 전 이른 아침에 항상 드나들던 대형 식품점에 진열되어 있는 작은 화분에 담긴 여러 색갈의 예쁜 꽃들을 들여다 보다가 손자, 손녀들에게 하나씩 사 다 주고 싶은 충동을 느꼈습니다.
그러나 4 명의 손자들은 그렇게 작은 화분 안에 앙징스럽게 피어 있는 작은 꽃에 큰 관심이 없을 것 이라는 생각이 들자 손녀 것만 사기로 결정했지요.
이른 아침 작은 딸네 집 현관 앞에 노란색 꽃이 담겨 있는 작은 화분을 조용히 놓아 두고 집으로 돌아와서 손녀 에게 이런 문자 메세지를 띄웠습니다.
“이사벨라, 너는 할아버지에게 하나 밖에 없는 손녀이기에 너에게만 이 작은 꽃을 선물한다. 물을 너무 많이 주지 말고 햇살이 잘 비치는 곳에 놓고 예쁘게 잘 키우기 바란다.”
아니나 다를까! 조금 있으니 전화기로 이사벨라의 흥분된 음성이 들려 왔습니다. 좋아서 어쩔줄 몰라하는 손녀의 모습이 눈에 선하게 떠오르는 것이었습니다.
“아, 그렇구나! 내가 어린 손녀의 눈 높이를 제대로 맞추어 주었구나! ” 라는 자부심(?)과 함께 만일 활짝 핀 큰 장미가 심겨 있는 큰 화분을 선물했다면 저 어린 손녀가 저렇게 까지 좋아 했을까? 그렇지 않았을 것 같다는 생각이 내 머리를 채웠습니다.
조금 있으니 앙징스런 작은 노란 꽃 화분을 들고 찍은 사진이 카톡으로 날라 들어 왔습니다. 그렇다! 과연 사람들은 일상에서 이웃과 눈높이를 맞추며 살아가려는 노력을 얼마나 기울이며 살아 왔을까요?
그리고 얼마나 많은 사람들로부터 자신들의 눈높이로 올려서 또는 내려서 맞추며 살아 가라고 강요 당하고또 강요하며 살아 왔을까요?
자전거를 타고 가는 친구와 옆에서 걸어가는 친구가 보조를 맞추어 함께 가려 할 때 더 힘든 쪽이 자전거를 탄 친구일까요, 걸어가는 친구일까요? 아니면 법정에서 판사의 파워가 더 셀 까요, 검사의 파워가 더 셀까요?