블랙먼데이로 모든 것 날린 뒤 다시 재기-이성기씨의 ‘절망의 덫’에서(3)

나는 1943년 경북 왜관에서 공무원인 아버지 이우채 시와 어머니 장재봉 여사의 육남매 중 아들로 태어났다. 어린 시절 한국 전쟁을 겪으면서 분단의 아픈 역사를 온몸으로 체감한 나는 자유와 돈과 푸른 이민의 꿈을 안고 1974년 캐나다로 이민 왔다. 비행기 표를 제한 500달러로 시작한 이민 1세대로서 낯선 땅에서 치열하게 잡초같은 생명력으로 살아 왔다라고 할까. 아마 나에게는 조상 대대로 내려오는 한국인의 끈기가 잠재되어 있는 거 같다 

나는 캐나다에  들어온 이후 철강공장 직원, 택시운전사,  백화점 경비 등 다양한 육체노동을 했다.

구세주같은 어망회사 사장으로 부터 일도하지 않고 한달치 월급으로 받은받은 돈은 당시 우리식구가  40일 정도 살 수 있게 해주었다. 

 이후 중고차판매원으로 일했지만 겨우 한대 매매 성사시키나 싶었는데 계약자가 해약하는 바람에 그만 놓쳐버리고 직장마저 그만 두게 되었다. 실패에 실패를 거듭했지만 결코 희망의 끈을 놓치지 않았다. 

이후  안경 판매업을 시작으로 사업체에 뛰어들었고 어느 정도 사업 경험이 쌓인 1980년도에는 대한민국의 TVRO (Television Receiving Only)와 RF(Radio Frequency) Engineering을 전수하여 교국의 산업 발전에 일조 했다.

 또한 1982년부터는 Korean Made Satellite 시스템을 북미에 소개하고 판매하기 시작했다. 1985년 Platinum Communication Inc란 회사를 운영 했다.

 그러나시련도 비껴가지 않아, 하루 만에 주가지수가 20% 넘게 하락한 1987년 10월 Black Monday 사건으로 모든 것을 잃고 만다. 하지만 이에 굴하지 않고 1989년 Icon Global Supply Inc. 설립으로 재기에 성공하게되었다.

파란만장한 7 번 실패끝에 나는 드디어 유태인들이 장악하고 있던 소소한 사업에 뛰어들 지로 작정 목숨을 걸고 전투하다 싸워 동양인 최초로 한국인이 내가 드디어 세계적인 기업 스타벅스에 커피 접는 되기를 납품하여 기반을 잡기 시작했다 작지만 확실한 사업이었다 이쑤시게, 커피막대 (Coffee Stir Stick : 전세계 스타박스에 납품) 등 현재 256가지 소모품을 북미시장에 판매하는 회사로 성장 성장시켰다. 내게 있어서 소확행(小確幸)의 시작이자 사업에 든든한 버팀목이 되었다. 

그러던 1994년 어느 날이었다 한 통의 편지를 받게 된다 .악마의 덫에 걸린 것이다. 나이지리아 혁명정부가 외국에 성실한 기업인에게 계좌를 빌려주면 5,000만달러의 25% 커미션을 준다는 나이지리아 국제사기단의 교묘한 수법에 걸려들어 나이지리아에서 열흘 동안 감금 생활을 하게 되었다.

 나는 라고스에서 Irish 신부의 도움으로 탈출하기까지 그 열흘간은 마치 10년같은 생각조차 하기 싫은 악몽이었다. 내가 스스로 자초한 그 악몽을 ‘허황된 물육이 뱀의 혀처럼 나불댄 꿈’ 이었다고 했다. 

누가 그 꿈을 꾸었는가? 그건 ‘장자의 나비에 꿈’ 허황된 물욕에 눈이 먼, 사탄의 유혹에 홀린, 살아 생전 두번다시 꾸지말아야할 악몽을 스스로 꾸었던 꿈이었다. 누구를 탓할 것이 없다. 나 자신이 불러온 화였다. 나이지리아에서 구사일생으로 돌아온다는 자서전 ‘절망의 덫에서’드레스를 출간, 고등학교 동창 30여명을 초청  2018년 6월 30일 서울의 한 음식점에서 출판 기념회를 가졌다. 우리 친구들은 가슴을 활짝 열고 나를 반겼다. 

나는 젊은이들에게 ‘내 탓이라’ 할 줄 알아야 하고 ‘포기하지 말아야 한다’는말해주고 싶지만 ‘꾼’이 되어야 한다는 것도강조하고 싶다. 북미나 유럽 혹은 선진국에서는 자신이 스페셜리스트라고 불리길 좋아한다. 우리식으로 표현하자면 ‘꾼’이다 선진국 사람들은 기술을 배우려고 노력하지만 한국사회에선 아직도 이를 경계하는 경향이 있다. 조선시대에는 과거 시험을 잘 봐서 급제하기만 하면 벼슬길에 올라 입신양명 하였으니 뗏거리가 없어도 서책을 가까이 하는 것이 최고의 삶으로 여기기도 했다. 이런 백수들을 백면서생이라 높여 부르기도 했다. 요즘은 치자면 특별한 기술 없이 놀고먹는 얼굴이 창백한 고학력 백수들이다.그건 안 되고 진정한 꾼이 되어야 한다. (끝)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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