알버타 북부, 사스캐처원 뚝 떨어진 작은 마을 곳곳에서 그로서리나 인디언 밴드를 운영하는 한인들이 많다. 트럭에 물품을 가득 싣고 부인과 함께 내륙 곳곳을 누비며 이들에게 물품을 공급하고 있는 베스트 트레이딩 대표 써니 리 (이선희) 사장. 어찌보면 등짐과 봇짐을 메고 촌락 장시를 돌아다니던 옛 보부상과 같다. 코로나 바이러스 사태 이후 외진 마을의 한인 그로서리 주인들은 어떻게 지낼까? 써니 사장을 웨스트힐허스트 자택에서 만나 그쪽 업계 이야기를 들어보았다.
Q : 컨비니언스나 그로서리는 한인 자영업의 주종이죠. 알버타와 사스캐처원 곳곳에 얼마나 많은 가게가 있습니까.
A : 거래처가 400군데 정도 됩니다. 외곽으로 가면 컨비니언스 보다는 그로서리가 주유소가 많습니다. 인디언밴드 그로서리도 전체 5% 정도 차지할 정도로 적지 않습니다. 한인들이 80%를 차지하고 있습니다. 인구 400-1,000명의 마을에 그로서리가 있습니다. 심지어 인구 250명 마을에 있느 그로서리도 있습니다. 30 , 40대 젊은 한인 부부들도 적지 않습니다.
Q : 코로나 바이러스 영향이 없습니까?
A : 팬데믹으로 피자집이 잘 되듯 지난 4월 이후 오지 그로서리들은 오히려 재미를 보고 있습니다. 시골에선 슈퍼스토어나 코스코 코압은 멀고 또 가서도 줄을 서야하니까 그냥 동네 그로서리를 이용할 수밖에 없습니다. 게다가 젊은 사람들은 정부지원금을 받아 돈이 있고 시골에서 쓸 곳은 그로서리 밖에 없지요.
Q : 어떤 상품들을 취급합니까? 옛 보부상들도 포목이나 어염등 비교적 부가가치가 높고 무게나 부피가 나가지 않는 상품들을 취급했다는데요.
A : 마찬가지입니다. 4.5톤 트럭에 많은 것을 실어야합니다. 새니타이저 마스크 모자 후드 안경 핸드폰 악세사리가 대표적이지요. 그런데 마리화나가 합법화된 뒤 관련 도구들이 많이 팔립니다. 종류도 1천개가 넘구요. 한인 그로서리 주인들 가운데 종교적인 이유로 비치를 꺼리는 경우도 있지만 새로운 인기 품목으로 떠오르고 있습니다. 또 캐나다 사람들이 좋아하는 칼도 효자상품입니다..
Q : LA에선 한인들이 많이 진출하던 스왑밋이 온라인 영향으로 조금씩 사라지고 있습니다. 그로서리나 컨비니언스의 경우 온라인 영향은 받지 않나요?
A : 캘거리 도심은 모르겠는데 저희가 거래하는 그로서리들은 주로 오지 시골에 있어 배달이 쉽지 않고 또 느려서 큰 영향은 없는 것같습니다. 눈에 띄는 트랜드의 하나는 초기 그로서리 한인 주인들은 나이가 들고있고 인도 파키스탄 사람들이 밀치고 들어오고 있다는 점입니다.
Q : 어떻게 이 사업에 발을 들여놓은 겁니까?
A : 고등학교 졸업후 부모님과 이민왔고 토론토에서 컨비니언스를 했습니다. 그런데로 잘 했습니다. 그러다가 친구와 새로운 시도를 하다 실패하고 8년 전에 캘거리로 왔습니다. 컨비니언스나 그로서리에 물품을 공급하는 토론토 분과 일을 함께 하다 인수를 했습니다.
열심히 했습니다. 거래처 가면 청소와 디스플레이 도와주고 재고 리턴도 잘 받아주고요. 유대 관계가 중요하지요 .무엇보다 자주 가니 토론토에서 원정 오는 사업자들보다는 경쟁력을 가질 수있었습니다. 이제 토론토 사업자들은 모두 철수하고 없습니다.
몇년 동안 그런대로 사업을 잘 했습니다. 그런데 오일산업이 쇠퇴하면서 알버타와 사스캐처원 시골 마을의 그로서리들이 어려움을 겪었고 저도 영향을 받았습니다. 게다가 내 밑에서 일하는 사람이 독립해서 경쟁구도를 만들어 더 힘들게 했습니다. 코로나 바이러스 사태로 다시 그로서리 경기가 반전되는 게 아닌가 하는 기대를 하고 있습니다.
Q : 사업하면서 또 어떤 어려움들을 겪습니까?
A : 겨울철 운전이 힘듭니다. 무스에 받혀 차를 폐차시키기도 했고 불랙아이스에 미끌려 아찔한 경험도 여러번 했습니다. 오지로 갈수록 장사가 잘 되니 어쩔 수없지요. 최근에 나는 알버타 북부와 BC주 일부를 맡고 파트너가 사사캐처원과 알버타 남부를 맡도록 했습니다. 그래도 한달에 한번 일주일 정도 알버타 북부 오지 등을 누빕니다.
사업을 더 키워 도매상으로 발돋움하려고 노력하고 있습니다.
( Yul Kim 편집위원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