모두 이웃사촌 같았던 모린(Morrin) 사람들 -양재설의 ‘약속의 땅 가나안’ 3편

드럼헬라 ( Drumheller ) 에서 북쪽으로 30 Km. 정도 가면 인구 260 명이 채 안되는 모린 이란 작은 동네가 있습니다. 이 동네에 유치원 에서 부터 12 학년 까지 있는 학교가 있고 Starland County 행정을 맡아 보는 사무실과 동네 행정 ( Village Office ) 을 보는 사무실이 있습니다. 또 허스키 오일 회사 현장 사무실 ( Husky Oil Co. Field Office ) 과, 은행이 하나, 보험회사가 하나, 호텔 하나, 내가 운영 하던 우체국 을 겸한 그로서리 가게가 하나 그리고 교회 두개(United Church & Lutheran Church)가 전부입니다. 나는 1999 년 4 월에 그로서리와 우체국이 딸려 있는 가게를 사서 모린 에서 살게 되었습니다.

그곳에 간지 몇일 안되어서 양로원 ( Nursing Home )에 계시던 할아버지 가 돌아 가시어서 동네에 있는 마을 회관 ( Community Hall ) 에서 장례식을 하게 되었습니다. 먼저 가게 주인이 말 하기를 장례식을 하는동안은 가게문을 닫는다고 했습니다. 이 동네에 있는 은행이며 보험 회사 호텔 모두 다 문을 닫고 돌아가신 분의 명복을 빌어 준다는 것입니다. 나는 그의 말 대로 가게문을 닫고 한번도 본적이 없는 돌아가신 분을 생각 하며 슬픔을 당한 유가족들을 위해 기도를 했습니다. 다른 동네에도 장례식 때 이렇게 모든 가게와 사무실 문을 닫고 돌아 가신 분의 명복을 빌어 주는 데가 있는지 모르지만 나는 처음 경험하는 일이었습니다. 누구의 아이디어로 시작 했는지 모르지만 좋은 전통을 지키며 사는 동네 라는 생각을 하게 되었습니다 .

모린에 산지 2년째 되는해 봄은 유난히 바람이 세게 불었습니다. 어느날 아침에 가게 문을 열기 위해 일찍이 가게에 나갔더니 지난밤에 세차게 분 바람을 못 견디고 지붕 한쪽 귀퉁이가 뒤집어저 있었습니다. 보험 회사에 보고 하고 보험 처리를 해달라고 했더니 사람이 와서 조사를 하고 간후 일주일쯤 지난 다음 보험 회사에서 편지가 왔습니다 지붕 한쪽 귀통이만 고치면 되지만 지붕의 반을 고치는 비용을 보험 회사가 부담 해주겠다는 내용이었습니다. 반쪽만 새로하면 색깔도 틀리고 수명도 틀리고 좋지 않은데 내돈을 드려서 전체를 새로 해야 하나 고민 하고 있는데 가게 앞에 사는 래리(Larry)란 분이 와서 보험회사에서 지붕을 새로 해주게 됐냐고 묻기에 반쪽만 해준다고 편지가 왔다고 말 했습니다. 요즘 보험 회사들이 예전 같지 않다면서 보험 회사와 싸우지말고 반쪽 할수있는 돈을 받고 그 돈으로 지붕 전체를 할수 있는 재료를 사오면 내가 몇일 시간이 있으니까 자기가 해 주겠다는 것이었습니다. 나는 그의 말대로 재료를 사왔고 래리 는 지붕위에 올라가 일을 하기 시작 했습니다. 그런데 뜻 하지 않은 광경이 벌어졌습니다.

가게에 왔던 손님들이 너희 가게 지붕을 새로 하냐면서 트럭에 가서 연장을 가지고 지붕에 올라가 서 래리 와 같이 일을 하는 것이었습니다. 어떤 농부는 집으로 돌아 가서 곡식을 실어 나르는데 사용 하는 덤푸 트럭을 가지고 와서 지붕을 뜯은 쓰레기를 버려 주었습니다. 부탁 하지도 안했는데도 가게에 왔던 손님들이 내일 같이 도와 주어서 이틀 만에 새 지붕이 완성 되었습니다. 이렇게 고마울수가 없었습니다. 나는 이분들이 일한 값을 지불 해야 겠는데 얼마를 할지 몰라서 얼마를 지불 하면 되느냐고 물었습니다. 이분들은 말 하기를 돈을 받을 생각이었으면 애초에 일을 하지 안 했다는 것입니다. 이웃이니까 이웃을 도와주기 위해서 한것이라고 말하는 이도 있고 친구 니까 친구를 돕기 위해서 했다고 말 하는 사람도 있었습니다. 할수없이 저녁 한끼를 사는 것으로 해결을 보았습니다. 이웃의 일을 아무 대가를 바라지 않고 내 일 같이 도와 주는 모린 사람들의 생활 하는 모습에 감명을 받았습니다.

이런 사람들이야 말로 “네 이웃을 네몸같이 사랑 하라”(마22:39) 는 성경 말씀을 그대로 실천 하며 사는 것이 자연 스럽게 생활화 된 사람들이구나 하는 생각을 하게 되었습니다. 우리 가게는 상추를 팔때 무게를 달아서 팔지를 않고 작은 것이던 큰것이던 같은 값으로 팔았습니다. 하루는 혼자 사는 부인이 제일 작은것을 골라 가지고 왔습니다. 그래서 왜 큰것을 가지고 오지 작은것을 가지고 왔냐고 했더니 큰것을 사면 다 사용 못하고 버리게 된다고 작은것을 산다고 했습니다. 일반적으로 사람들은 남으면 버릴 지라도 같은값이면 큰것을 사는 것이 사람의 심리 인데 이분은 그렇지 않았습니다.

어떤 사람은 가게에와서 너희 가게가 이곳에 있어서 고맙다고 인사를 하는 사람도 있었습니다. 만일 너희 가게가 없었으면 먼곳 까지 가서 장을 봐야 할터인데 너희 가게가 있어서 먼데 까지 가지 않고 장을 볼수 있어서 고맙다고 인사를 합니다. 말 하는 태도로 봐서 그냥 듣기 좋으라고 겉으로 하는 말이 아니고 진심으로 하는 말인 것을 느낄수 있었습니다.

이런 일도 있었습니다. 어느해 겨울 주말에 캘거리에 왔다 돌아가는데 폭설이 쏟아 졌습니다. 늦은 저녁에 쉬지도 못 하고 가게 앞의 눈을 칠 생각을 하니 내가 왜 이 나이에 이렇게 고달픈 삶을 살아야 하나 하는 생각을 하며 신세 타령이 자연 스럽게 나왔습니다. 그런데 가게에 도착해 보니 누군가 내 마음을 다 읽은듯 가게 앞의 눈을 깨끗하게 다 치워 놓았습니다. 운전 하고 오면서 신세 타령 한 내가 부끄러웠습니다. 누가 했는지 알아야 고맙다고 인사라도 할 터인데 알길이 없어서 오늘날 까지 고맙다는 인사를 못하고 있습니다. “너는 구제 할때에 오른손이 하는것을 왼손이 모르게 하여”란 성경 말씀을 생각 나게 합니다.

어느해 10월 말 할로윈 데이 (Halloween Day)에 있었던 일입니다. 우리 가게는 우체국을 겸 하고 있어서 가게 옆에 편지를 부칠수 있고 꺼내 갈수 있도록 조그만 공간이 있습니다. 낮에 는 가게 를 통해서 편지 꺼내는 공간으로 가서 편지를 꺼내가고 저녁시간 가게문을 닫은 후에는 밖에 따로 드나 들수 있는 문을 열어 놓았습니다. 자유로이 들어와 편지를 꺼내 갈수 있고 편지를 넣는 편지함도 있어서 편지도 부칠수 있도록 만들어 놓았습니다.

할로인 날 다음날 아침에 가게에 나갔더니 편지를 꺼내 가도록 마련된 공간이 쓰레기로 가득 차 있었고 그리고 편지함 속에도 쓰레기로 가득 차 있었습니다. 그리고 흰 벽은 낙서를 지저분 하게 해 놓았습니다. 그날 아침 가게 문을 열기 전에 쓰레기를 치우느라고 고생을 했습니다. 벽에 낙서 한 것은 시간 있을때 새로 페인트 칠을 할려고 그대로 놓아 두었습니다. 이 낙서 한것을 보고 동내 사람들의 반응이 제 각각 이였습니다. 어떤 이는 나쁜 아이들의 소행 이라고 욕을 하는 사람도 있고 어떤 사람은 자기도 어렸을때 재미로 동네를 돌아 다니며 그런 나쁜짓을 많이 했다고 별것 아니라는 듯 쉽게 말 하는 사람도 있었습니다. 그런데 래리는 낙서 한것을 보고 아이들이 장난을 했다면서 자기가 새 페인트칠을 해주겠다는 것이엇습니다. 래리는 그날 저녁에 Sand Paper 로 벽 전체를 깨끗하게 긁어내고 다음날 페인트 칠을 해 주었습니다. 물론 돈은 받지 않았습니다. 페인트 값이라도 주겠다고 하니까 쓰고 남은 것으로 했다고 거절 했습니다.

내 욕심 같아서는 나이와 상관 없이 건강이 허락 할때 까지 이곳에서 가게를 운영 하며 살고 싶었습니다. 돈 때문이 아니라 가게에 있으면 동네 사람들을 다 만날 수있고 그들과 일상 생활을 나누며 지내는 일이 너무 좋았기 때문입니다. 그러나 내 나이 70을 넘으면서 실수 하는일이 많아 졌습니다. 특히 돈을 거슬러 줄때 잘못 거슬러 주는 일이 많아졌습니다. 하루는 가게에서 물건을 사가지고 집에 갔던 아주머니가 영수증 하고 5불를 들고 가게로 돌아와서 거스름돈이 5불 더 왔다고 나에게 5불을 주고 돌아 갔습다. 그런 일이 있은후 결국 가게를 시장에 내놓게 되었고 2011년 4월에 가게를 팔고 집은 팔지 않았습니다. 우리는 모린 에서 그대로 살 계획을 했기 때문 입니다. 사람 들이 순진 하고 친절해서 이런 사람들과 어울려서 남은 인생을 이들과 같이 보내기를 원했기 때문 입니다. 그러나 우리의 계획은 바뀌어서 캘거리로 이사 오게 되었습니다. 이사를 준비 하면서 생각 나는 성경 말씀이 있었습니다. “사람이 마음으로 자기의 길을 계획 할지라도 그 걸음을 인도하시는 자는 여호와 시니라”(자먼16:9)

이사짐 나르는 회사에 전화를 해서 이사 하는데 비용이 얼마나 드느냐고 물었더니 사람이 와서 다 둘러보고 하는 말이 짐을 싸주고 풀어주는 비용까지 합해서 7000 불 이라고 합니다. 이사 비용이 이렇게 많이 들줄 예상 못했습니다. 주일날 교회에 갔더니 로렌(Lorraine은 목사님 사모님 이시다) 이 캘거리로 이사 한다면서 어떻게 이사 할것이냐고 묻기에 이사짐 나르는 회사를 통해서 하려고 알아 보았더니7000불이 든다는 견적이 나왔다고 했습니다.

그 많은 돈을 주고 이사하지 말고 U-Haul 트럭을 빌리면 동네 사람들이 이사를 도와 주도록 자기가 주선 하겠다고 했습니다. 이사하는날 아침에 이사를 도와 주기 위해서 온 사람들은 17 여명 이나 되었습니다. (실재 온 사람은 20명도 더 왔으나 사람이 많으니까 돌아간 사람이 있어서 17명 이다) 나는 깜작 놀랐습니다. 두사람 혹은 세사람 정도 올줄 알았기 때문입니다. 일 하는 사람이 많으니까 늦게 시작 했는데도 빠른 시간에 이삿짐을 트럭에 다 실었습니다. U-Haul 트럭에 싣고 남은 짐은 동내 사람들 트럭 에 분담 해서 실었습다. 캘거리로 떠나기 전에 일 한 사람들에게 점심을 대접을 해야겠는데 어떻게 하나 고민 하고 있는데 래리네 집에서 연락이 왔습니다. 자기네 집에 점심이 준비되어 있으니까 일한 사람 전원 점심을 먹으로 오라는 것이었습니다. 이렇게까지 세밀 하게 신경을 써줘서 점심 까지 해결 할수 있으니 이사하는 일이 훨씬 수월 했습니다. 짐을 싫고 캘거리로 오는데 8명 이나 따라와서 짐을 내리는것 까지 도와 주고 모린 으로 돌아갔습니다.

그뿐만이 아닙니다. Morrin Community 에서는 Community Hall에서 아침식사를 준비했다고 식사 하러 오라고 했습니다. Community Hall에 가서 아침을 먹고 있는데 날보고 앞으로 나오라고 해서 나갔더니 카드속에 현금 1000불을 만들어서 넣고 내가 운영 하던 가게 전면 사진을 만들어 사진 틀에 넣어서 선물로 주었습니다. 카드에는 이런 구절도 적혀 있었습니다. 잘 가세요 그리고 고맙씀니다. ( Farewell & Thank You ). 모린 사람들은 내가 고맙다고 해야 할 말을 도리혀 자기들이 내게 고맙다고 말을 하고 있습니다. 내가 다니던 루터교회 (Lutheran Church) 에서는 주일 예배를 우리 가족을 위해 송별 예배를 드렸습니다. MacArthur 목사님은 이 예배가 송별 예배가 아니고 그동안 신앙 생활을 함께 하며 지낸 것에 대한 감사 예배라고 설교를 시작 하셨습니다. 예배 후에는 교회 에서 준비한 만찬을 나누며 이별을 서로 아쉬워 했습니다. 그리고 여름철이면 잘 사용하고 있는 우리집 뒷마당에 있는 가든 테이불셑 ( Garden Table Set ) 를 선물로 받았습니다.

우리가 가게를 팔고 Calgary로 이사를 간다는 말이 퍼지자 두딸을 둔 어머니가 가게에 와서 하시는 말씀이 우리가 떠난다고 두 딸이 슬피 울었다고 합니다 어떤 부인은 말을 하다가 우리 앞에서

눈물을 흘리기도 했습니다. 나는 모린 사람 들이 내게 베푼 친절을 잊지 못할 것입니다. 참으로 고마운 사람 들입니다. 저에게 많은 사랑을 베풀어 주신 모린 분들께 감사의 말씀을 드립니다.

(양재설, 전 캘거리 한인회장)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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