이민자의 애환이 담긴 ‘스왑밋(swapmeet)’이 하나둘씩 사라진다. 개발 붐과 온라인 쇼핑 시대로의 전환이 스왑밋을 역사 속으로 밀어내고 있어서다.
LA 지역 언론 ‘이스트사이더’는 21일 샌타모니카 불러바드 인근 유니온 스왑밋 철거와 관련, “다양한 이민자가 모였던 멜팅팟이 개발 사업으로 무너지고 있다”고 보도했다.
치열했던 삶의 현장은 자본에 의해 잠식됐다. 이 부지는 곧 주상복합 건물로 개발을 앞두고 있다. 한때 유니온 스왑밋에서 영업을 했던 한식당 ‘나비’ 이해진 대표는 “이곳은 아메리칸 드림을 이루기 위한 이민자들의 투쟁과 기쁨, 성취 등 수많은 이야기가 배어있는 곳”이라고 말했다. 이 대표는 “한인과 라틴계 등 수많은 행상인이 이곳에서 교류하며 하루하루 생계를 이어가고 이민자만의 이야기를 써내려갔다”며 “스왑밋이 허물어지는 것을 보니 한 시대가 저물어가고 있음을 느낀다”고 말했다.
스왑밋은 이민자가 치열하게 살았던 삶의 현장이다. 이민 생활의 눈물과 땀이 스며있다. 웃고 울었던 흔적들이다. 스왑밋엔 없는 게 없다. 장난감, 원스톱 문신, 자전거 수리, 열쇠 복사, 여성용 눈썹, 애완동물 용품, 다양한 색깔의 실(yarn), 티셔츠, 스포츠 용품, 골동품, 가구, 중고 물품 등 과거 한국의 재래시장처럼 직접 눈으로 보고, 만져도 보고, 흥정해서 사는 재미가 있다. 오감으로 느낀 스왑밋은 기억 속에 추억으로 남는다.
35년 전 미국에 건너 온 정순영(72·LA)씨는 “이민 초창기 스왑밋에 가면 한국 상품을 들고 나와 팔던 한인 행상인이 정말 많았다”며 “물건만 사고 파는 게 아니라 거기서 만나는 한인들과 고국 소식은 물론 소소하게 살아가는 이야기도 나누면서 이민 생활의 위로를 얻었던 곳이 바로 스왑밋이었다”고 회상했다.
본래 스왑밋은 1960년대 백인들이 중고품 등을 물물교환하는 형태로 시작됐다. 일종의 벼룩시장이었다. 70년대 들어 라티노 이민자들이 중남미 등에서 물건을 떼와 값싸게 팔면서 물품이 다양해졌다. 스왑밋의 부흥에는 체인 형태의 극장 출현과 한인 행상인들의 유입이 한 몫을 차지한다. ‘드라이브 인 극장’이 쇠퇴하면서 대규모 공공 주차장은 새로운 용도를 찾아야 했다. 그곳에 스왑밋이 오늘날의 형태로 싹이 튼 것이다.
UCLA 유헌성 연구원(사회학)은 “스왑밋은 1970~80년대 한인 이민자들이 경제적 기반을 갖추는데 지대한 역할을 했던 곳”이라며 “이후 한인들은 좀 더 응집된 형태의 ‘실내(indoor) 스왑밋’으로 자리를 옮겼다. 당시 한국 물품을 들여와 팔던 상업 행위는 점차 한국과의 무역업, 유통업, 식품업 등으로 발전했다”고 말했다.
가주 전체 스왑밋 300여개 ‘명맥’
LA타임스도 지난 20일 스왑밋 행상인들의 삶을 풀어낸 칼럼을 게재하면서 “다양한 주민을 같은 시간, 같은 장소에 그렇게 많이 고객으로 맞을 수 있는 곳이 스왑밋 이었다. 공공장소를 활용한 상당히 유연하고 민첩한 형태의 상업 활동 지역”이라고 전했다.
현재 가주내 스왑밋은 300여 개로 추산된다. 이는 1990년대 가주 지역에서만 2000개 이상의 스왑밋이 운영됐던 것을 감안하면 약 85%가 줄어든 수치다. 스왑밋이 열리는 공터나 주차장 등이 자꾸만 개발되면서 설자리를 잃고 있기 때문이다. 게다가 온라인 상거래가 활발해지면서 아날로그적인 스왑밋의 존재 자체가 점점 더 희미해지고 있다.
자바시장 제이크 최(의류 도매업)씨는 “스왑밋은 다양한 인종과 물건 등 그 어느 곳에서도 볼 수 없는 미국만의 독특한 형태의 시장이었다”며 “이제 시대가 변해서 웬만한 물건은 온라인 상에서 다 구할 수 있다. 앞으로 스왑밋 같은 시장이 다시 열릴 수 있을지 의문”이라고 말했다.
스왑밋은 한 시대 우리 한인 이민자들의 이야기였다. 이제 점점 그 목소리가 들리지 않는 시대가 되고 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