금융업의 경계가 모호해지고 있다. 기존엔 정부로부터 허가를 받은 곳에서만 여·수신 업무를 맡아왔지만 네이버와 카카오 등 ICT 기업도 금융사와 제휴를 통해 금융회사로 변신하고 있다. 이들은 포털과 메신저 등 이미 구축해 놓은 플랫폼을 바탕으로 자연스럽게 금융 생태계에 스며드는 것을 목표로 한다. 인터넷 기업들이 금융업을 넘보는 이유는 뭘까.
■ “뱅킹만 살고 뱅크는 죽는다”
빌 게이츠는 금융서비스(뱅킹)는 살아남고 뱅크(은행)는 필요하지 않은 시대가 올 것이라고 예측해왔다. 경제가 운영되는 한 돈은 돌고 돌아야 하기 때문에 금융 서비스 자체가 없어질 수는 없지만 서비스 주체는 바뀔 수 있다는 뜻이다.
그 때가 언제일 지는 모르지만 아예 조짐조차 없는 것은 아니다.
카카오페이와 네이버파이낸셜 등 테크핀(Tech-fin) 기업이 잇따라 나오면서 전통적인 금융 기업에 적잖은 위기감을 불러일으키고 있다. 특히 네이버파이낸셜이 미래에셋대우와 손잡고 CMA예금 통장을 출시하며 미래에셋대우보다 ‘네이버 통장’으로 부르기로 한 것은 예사롭지 않은 조짐으로 생각해볼 수 있다.
이런 일이 늘어나면 네이버와 카카오 등 디지털에 익숙한 ‘MZ세대(밀레니얼-Z세대의 합성어)’에겐 테크핀이 대표 금융 서비스로 간주될 가능성이 높기 때문이다. 금융 서비스 주체의 변화에 있어 테크핀이 주목 받는 이유는 분명하다.
먼저 자체 비용 절감에 유리하다는 점을 들 수 있다. 테크핀은 전통적인 금융기업에 비해 기술 중심적이기 때문에 오프라인 매장보다는 온라인이나 스마트폰 중심으로 서비스를 제공한다. 매장 임대료를 대폭 낮출 수 있다. 이와 함께 매장에서 고객을 응대하는 일이 줄어들기 때문에 인건비도 크게 줄일 수 있다.
대형 테크핀은 특히 이미 대중 친화적이고 고객과의 폭넓은 접점을 갖고 있기 때문에 모객을 위한 마케팅 비용도 크게 줄일 수 있다.
그렇게 줄인 비용을 고객에 돌려준다면 누가 더 유리할 지는 뻔한 일이다.
비용 절감 뿐이 아니다. 대형 테크핀은 전통적인 금융 기업에 비해 편의성을 높인 IT 기반의 서비스 개발 노하우가 압도적으로 많다. 온라인과 스마트폰을 통한 서비스 개발과 제공 측면에서는 전통 금융 기업과 비교할 수조차 없다.
■ 유스(Youth) 고객의 블랙홀될 가능성 高高
대형 테크핀은 특히 디지털에 익숙한 ‘MZ세대’에게 소구력이 크다.
테크핀 서비스의 경우 쇼핑과 음악 등 이미 이용하던 서비스와 밀접하게 연관된 형태로 제공되기 때문에 이용자에게 마치 공기나 물처럼 스며들 수 있다. 네이버와 카카오가 익숙한 사람은 은행보다 테크핀을 택할 확률이 높다.
실제로 네이버파이낸셜과 카카오페이 등 테크핀은 초기 단계에서는 많은 돈을 관리하는 중장년층보다 디지털 문화를 즐기는 ‘욜로(YOLO)족’을 겨냥하고 있다.
전통 은행들도 이들을 공략하기는 한다. 추후 이들이 성장할 경우 훌륭한 ‘집토끼’가 될 것이기 때문이다. 대학교와 업무협약을 맺어 등록금 납부 계좌 은행이 되고자 하거나 학생증 카드로 선택받기 위한 노력 등이 그 일환이다.
하지만 그 경쟁력에는 차이가 있어 보인다. 대형 테크핀의 경우 가만히 앉아서도 저절로 찾아오는 고객을 맞아 만족도를 높일 무기를 장착한 입장이라면, 전통 은행들은 숨가쁘게 고객을 찾아다녀야 하는 형편처럼 보이는 것이다.
은행 관계자들은 최근에 출시된 ‘네이버 통장’과 관련해 “다양한 부수적인 혜택으로 네이버 쇼핑을 자주 이용하는 젊은 고객에게 적어도 연 100만원을 묶어놓는 강력한 기제가 될 것”이라고 입을 모아 평했다. 이 평가는 꽤 중요한 포인트로 보인다. 네이버통장이 당장 돈 많은 VIP 고객을 끌어모으지는 않겠지만 젊은이들이 ‘생애 첫 금융 서비스’를 시작하는 곳이 네이버가 될 수도 있다는 뜻이 되기 때문이다.
은행들도 금융 서비스 주체의 점진적 변화에 대해 어느 정도 인정한다. 전통 은행과 테크핀 사에서 제공할 서비스의 폭이 다르기 때문이다.
한 은행의 관계자는 “은행이 배달을 하거나 옷을 팔 수는 없지 않느냐”며 “은행의 부수업무가 한정적이라는 점에서 플랫폼을 가진 테크핀이 성장한다면 은행은 앞으로 다른 묘수를 찾아야 할 것으로 보인다”고 진단했다.
■결국은 데이터 활용이 관건…”은행도 지지 않겠다”
은행의 변신은 이제 선택이 아니라 필수가 됐다. 그리고 몇 안 되는 그 해답은 ‘디지털과 데이터’라는 키워드로 압축되고 있는 듯하다.
디지털 역량은 결국 데이터 활용을 얼마나 어떻게 잘 하느냐에 달려 있다. 전통 은행의 경우 테크핀에 비해 기술 편의성과 접근성은 떨어지겠지만 오랜 전통으로 쌓아온 데이터를 갖고 있다는 점은 강력한 무기가 된다.
테크핀 기업이 실명 계좌 확보에 열을 올리는 배경도 바로 그것이다. 실명 계좌는 본인 인증이 된 계좌를 의미한다. 그것이야 말로 앞으로 새롭게 만들어야 할 모든 금융 서비스 상품의 배경과 근거가 되기 때문이다.
전통 금융기업이든 테크핀이든 결국 데이터 활용에서 만나게 되는 셈이다.
전통 금융에겐 디지털로의 변신이 필수라면 테크핀의 숙제는 수익이 될 것이다. 이익이 남지 않는 경영은 의미가 없기 때문이다.
카카오뱅크 대표 출신인 더불어민주당 이용우 의원은 “테크핀 서비스를 볼 때 고객을 모으는 데는 성공한 것으로 보인다”면서도 “앞으로의 질문은 어떻게 돈을 벌 수 있느냐에 관한 것이 될 것이고 그 답이 문제일 것”이라고 진단했다. (ZDNet)