코크레인에 한국가든 /문학관 구상하다 해외문학상 제정

-민초 이유식 캐나다 이방인의 뒤안길 5편

갤러리에서 장사꾼이 된 지 3년이 지났을 무렵  대학원 논문지도 교수님이시던 은사님이 격려차 이곳을 찾아오셨다. 나는 고생하면서 살아온 지난 수년간의 이야기를 진솔하게 말씀드리고 충고를 구했다 .

은사님은 생업 보다 더 중요한 일은 없다고 격려하시며  민초 (民草)란 호를 지어주셨다. “ 사람의 풀잎으로 살아가라. 겨울에는 모든 초목이 죽은듯 하지만 봄이 되면 다시 살아나지 않느냐. 너희 지금의 고통을 겨울로 생각하고 반드시 봄이 온다는 것을 잊지 말고 ‘사람의 풀’로 살아가라.” 

60이 넘어서는 한국사회의 공직에는 참여하지 않겠다는 결심을 한 뒤 시인으로서 나의 생을 마감한다는 마음으로 어찌하면 좋은 시 한편을 쓸까 하는 일념으로 정진을 했다.

시인의 길로 나선 뒤 1995년 첫 시집

 드디어 나의 첫 처녀시집 ‘로키 산마루의 노을’이 1995년도에 빛을 보게 되었다. 이후 7권의 시집을 냈다. 나의 첫 시집이 출간된 후 어떤 경로였는 지 기억이 없는데 동아일보 여성동아의 12월의 인물로 선정 시부문 전속시인인 박선욱 시인이 나의 시와 이민생활에 대한 대담을 요청해왔다. 

이의 엉성한 대담 결과로 그때 민족문학작가회의 이사장이시던 신경림 시인이 나를 민작의 회원으로 받아들이며 같이 문학활동을 하지고 제의해왔다.

 나는 한국에 문학 단체가 있는 것도 몰랐고 그저 어느 단체이든 문단의 정회원이 된다는 것이 큰 영광이라는 생각만 했다. 그 후 5년여 민작의 회원으로서 문단의 실태를 알게 되었고 민 작은 참여문학을 하는 곳이고 한국문협은 순수문학을 하는 곳이라 것을 막연하게나마 알게 되었다.

 나는 문학은 순수문학 즉 올바른 선비의 길을 걷는 것이 좋다는 생각에서 그 후 몇몇  한국문협 회원님들의 추천으로 현재는 한국문인협회 회원이 되어 가끔 월간문학에 글을 발표하고 있다.

한번은 한국문단의 원로이시고 시조 시의 대가이신 조성국 시인이 이곳 캘거리에 있는 아드님을 찾아오셨다.

 그 시절 나는 캘거리 동포들을 위해 캘거리문인협회를 창립하고 회장직을 5년째 하고 있을 때였다.

  여전히 나의 조국애와 동포애는 활화산처럼 식을 줄 몰랐고  동포들을 위해 내가 소유한 코크레인( Cochrane) 땅에 코리아가든을 만들어 한국전통문화를 보급하거나 민초문학관을 만들어 해외의 우리 동포들이 찾아줄 안식처를 만들까 하는 생각을 했었다..

조성국 시인 민초 해외문학상 제언

 조성국 시인이 우연한 기회에 나를 알고 전화가 주어 우리는 만남의 기회를 가졌다. 그때 내 마음의 진솔한 의견을 표출하였더니 조 시인이 며칠을 생각하셨다가 다시 전화를 주셨다. 

“민초시인, 내 생각인데 한국가든이든 문학관이든 이를 운영하자면 많은 애로사항이 따를 것이고 자식들에게 많은 부담을 줄 것인데 이미 시집을 여러 권 상재했으니 행여 문학상을 제정함이 어떻겠습니까?”.

 그 분의 제언으로 나도 며칠을 생각하다가 내자와 자식들 다 불러놓고 내 뜻을 전하고 의견을 물었다. 나의 아들 하나, 딸 둘은 대찬성이었다. 아버지가 인생을 멋지고 행복하고 보람차게 살아가는 것이 우리의 소원이라며 전부가 찬성했다. 나아가 자식들은 우리는 아버지에게서 아무것도 바라는 것이 없고 아버지가 이런 고귀한 뜻을 지녔음에 기쁨이 있다고 말하였다.

 나의 내자는 일찍이 나의 제의에 찬동을 했고 그저 실수없이 잘 운영해서 후세들에게 누를 끼치지 않았으면 좋겠다고 했다. 이렇게 해서 전가족이 합의해 민초해외문학상 제정을 합의한 것이 2006년 이었다..

그리고 2007년 나는 4번째 시집을 내고 출판 기념회를 하는 자리에서 부끄러움을 무릅쓰고 100여명의 동포 하객들에게  민초해외문학상 제정에 대한 나의 뜻을 밝혔다. 어느둣 13년째이다. 지난해까지 모두 12회의 수상자를 배출하게 되었다.

또한  10회상의 시상식은 내가 40년 간 둥지를 틀고 살아온 나의 제2의 조국 캐나다 캘거리에서 가졌다.

 나대로의 생각은 문학상은 첫째, 수상자의 작품성이 가장 중요한 것이다. 둘째는 심사를 하는 심사위원장이 얼마나 권위가 있는 선비인가, 남들이 보기에 객관적 타당성이 있는 심사평을 했는가. 세째 시상식을 얼마나 뜻있고 보람차게 시행했는가. 이 세가지 관점을 항시 생각하면서 한해 한해 문학상을 운영해 왔다.

  많은 분들이 문학상의 상금과 운용비용에 대한 관심을 표해 오기에 여기에  간단히 밝혀둔다. 처음 시작할 때는 수상 상금이 3천불이었다. 5회까지 이렇게 집행된 후 6회부터는 수상금을 5천불로 증액했다. 그 외 시상식 비용과 기타 운영비로 매년 만불 이상이 소요되고 있다.

 수상금을 좀더 올리고자 하나 자문위원회에서 수상금을 올리는 것이  중요한 게 아님을 강조한다. 계속해서 문학상을 운영하는 것이 더 중요하다는 것이다.

 나 자신의 사재를 사용하기에 재정적인 어려움과 부족함도 있지만 나름대로 조국과 동포사회에 헌신한다는 자부심이 있기에 그저 다른 바램은 없다. 내가 이 세상을 떠난 후에도 이유식이라는 시인이 한민족의 정체성 고양과 정서 함양을 북돋우는데 있조를 했다는 각인이 될 수 있다면 나에게 큰 영광이 되리라는 마음뿐이다 

민초해외문학상 수상자는  ①회 (2008년) 캐나다 변창섭 시인 ②회 (2009년) 중국 조룡남 시인 (대상),  중국 김미화 시인 (차상)  ③회 (2010년) 캐나다 이동렬 박사 수필 ④회 (2011) 미국 배정웅 시인 ⑤회 (2012) 독일 전성준 소설가 ⑥회 (2013)캐나다 강미영 시인 ⑦회 (2014)  러시아 엄복순 박사 수필 ⑧회 (2015) 브라질 안경자 소설가 ⑨회 (2016) 몽골 강외산 교수 소설과 시  ⑩회 (2017) 미국 최연홍 박사 시인(대상)  캐나다 유인형 수필(차상) ⑪회 (2018) 오스트레일리아 이귀순 소설가 ⑫회 (2019) 미국 김수영 시인 등이다.

 심사위원으로는 ☐임헌영 박사 , 한국평론가협회 회장 ☐김봉군 박사, 케토록대학 문과대학장 ☐김유조 박사, 건국대학교 부총장 ☐유안진 박사, 한국 예술원 회원, 서울대 명예교수 ☐정종명 소설가, 한국문인협회 이사장 ☐김종회 박사, 한국평론가협회 회장 ☐신경림 시인, 전 한국 작가협회이사장 ☐정소성 소설가 ☐ 김봉군 박사, 시인 문학평론가, 가톨릭 대학교 명예교수, 세계전통시인협회 한국본부 이사장 등이 맡아주셨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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