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캐나다는 백신을 자체 생산할 여력이 없다.”
지난달 24일. 캐나다 총리의 고해성사는 캐나다 국민들을 깜짝 놀라게 했다.
코로나19 백신 개발과 생산을 위해 글로벌 제약사들이 가속 브레이크를 밟고 있지만 캐나다에는 이 같은 임무를 수행할 토종 기업과 연구소가 언제부턴가 사라졌다는 것이다.
이 발언이 나오고 일주일이 지난 지금까지 캐나다 방송과 신문은 “어쩌다 캐나다가 백신을 개발·생산할 수 없는 국가가 되었는가”라며 탄식성 보도를 쏟아내고 있다.
4차 산업혁명의 총아인 인공지능(AI) 분야에서 캐나다는 세계의 기업들이 돈가방을 싸들고 이곳 대학과 연구소에 협업을 애걸할만큼 세계 최고의 AI 역량을 갖췄다. 그러나 백신 개발과 생산을 도맡았던 연구 인프라는 1990년대 시작된 정부 민영화 정책에 따라 속속 유럽 제약사들에 팔리며 소멸한 것이다.
대체 캐나다에서는 무슨 일이 있었던 것일까.
↑ 코너트 연구소에서 1950년대 인플루엔자 백신을 생산하는 모습. 무균 유정란에 바이러스를 주입해 배양하고 이를 추출하는 방식으로 백신 개발 작업이 진행된다. <사진/사노피> |
■프랑스·영국에 매각된 토종 백신 연구소
총리의 기자회견 뒤 현지 매체들은 과거 화려한 이력을 자랑했던 캐나다의 세계적 백신 연구시설인 코너트(토론토 소재)와 아만드 프래피어(몬트리얼 소재)를 조명하고 있다. 코너트 연구소는 한때 캐나다가 자랑하는 세계 의학계의 ‘슈퍼스타’였다.
1913년 디프테리아 발병으로 세계의 어린이들이 대거 사망하자 토론토의 의사인 존 G 피츠제럴드가 시내 마구간에서 백신 개발을 했던 게 코너트 연구소의 뿌리였다. 이를 토론토 대학이 캠퍼스 내 연구소로 확장하면서 코너트는 70여년 간 파상풍, 장티푸스, 뇌수막염 등 인류의 생명을 위협하는 질병을 물리치는 첨병 역할을 했다.
코너트와 아만드 프래피어 연구소는 또 개발한 의약품을 낮은 비용으로 제공하는 가격 정책을 유지해 세계 의학계의 존경을 받았다. 하지만 이 사업구조는 기업 경영의 측면에서 동전의 양면처럼 한계를 드러내기 시작했다.
상업성보다 공공성에 치중하다 보니 기업 호주머니에 들어가는 수입이 많지 않았다. 대학에서 분사한 연구소 형태로 외부 펀딩에 의존하다보니 ‘쩐의 전쟁’인 글로벌 제약시장 경쟁 환경에서 도태됐다.
이에 1990년대 초 진보보수당 소속 마틴 브라이언 멀로니 총리가 주도한 민영화 정책에 따라 이들 연구소는 순차적으로 다국적 제약사에 팔려나갔다.
백신 연구·생산의 슈퍼스타로 자리매김했던 코너트의 DNA는 현재 프랑스 다국적 기업인 사노피에 흡수된 상태다.
아르망 프래피어마저 영국의 다국적 제약사인 글락소스미스클라인에 매각되면서 두 연구소의 이름은 캐나다 국민들의 뇌리에서 사라졌다.
■”국민 건강 버팀목이 없어졌는데…AI만 잘하면 무엇하나”
CTV를 비롯해 현지 언론들은 지난 70여년 간 저렴한 가격으로 백신을 개발, 공급해온 캐나다 기업의 공중분해를 통탄하는 메시지를 보건·예방의학 전문가들의 입을 빌어 전하고 있다.
트위터 등 소셜미디어(SNS)에서도 “캐나타가 AI 연구의 세계적 중심인 반면 가장 기초적인 보건 역량에서 국민도, 정부도 몰랐던 한계를 노출했다”는 전문가 평가가 나오고 있다. 주류 매체들은 과연 과거 정부의 민영화 정책이 옳았던 것인가에 대해 근본 질문을 던지기도 한다.
외국의 혁신 백신·치료제에 의존하지 않고 ‘Made in Canada’ 의약품을 낮은 가격에 국민들에게 공급하며 생명 지킴이 역할을 했던 코너트를 프랑스에 매각한 것에 대해 특히 비판적 목소리가 크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