대가(待價)없는 희생.봉사.사랑 이를 수행하는 자는 민족의 꽃이고 영원한 우리 민족의 자랑이기에 우리의 민족 문화에 꽃을 피우고 동방예의지국이란 문화 민족으로 각광을 받고 영원한 지속을 이루리라.
괴헌(槐軒)고택의 전통과 조국 유림의 찬란한 꽃을 피우는 김 종국 회장, 참 훌륭한 인격의 소유자를 가까운 친구로 오랜 세월동안 우정을 나눔은 나의 영광과 자랑이라고 피력해 본다.
영남 유림의 본향은 안동, 영주, 봉화임은 나의 향리의 자랑이다. 이 지역의 군계를 지날 때 군계에는 선비의 고향이라는 싸인을 볼 수 있다. 내가 고향을 방문할 때 마다 군계에 붙어있는 이 유서 깊은 싸인을 보면서 선현들이 지켜온 고향에 뿌듯한 자부심을 느낀적이 많았다.
세월이 흘러 이제는 이런 이야기를 하면 따귀를 맞기에 알맞은 말일 것이다. 사농공상이 이씨 조선 500년의 역사였기에 그 시절의 반상이 아직도 아련히 존재하고 있슴을 엿볼 수 있다.
특히 나의 친구 연안 김씨의 종손 김 종국 회장을 영원히 잊을 수 없기에 나는 이 친구의 민족문화를 지키고자 한 헌신적인 희생과 노력에 아낌 없는 찬사와 존경을 표한다.
세상이 아무리 황금만능이라 하더라도 나의 일신의 부와 안위보다도 민족 백년대계를 위하여 자기의 모든 것을 내 놓을 수 있는 용기와 희생은 나 같은 범인은 도저히 생각할 수 없기에 나는 나의 벗 김 종국 회장을 한 없이 칭송을 하며 아낌 없는 박수를 치고 싶다.
국가를 위하여 그가 기증을 한 국보급 보물을 어찌 돈으로 환산을 할 수 있을까 마는 김 종국 회장은 16년전 감정가격이 40억원이 상회한 가보를 보관하고 있던 것을 2014년 국가에 기증을 했으니 내 생각으로 지금은 백억대 이상의 가계의 보물을 국가에 기증을 했고 국가에서는 이 국보를 보존키 위하여 영주 순흥 소수 서원 선비의 촌에 이 가계의 기증품을 건물을 지어 몇개의 방에 분산하여 우리 문화의 보존과 후세들에게 귀감을 주고자 전시를 하고 있다.
이어 연안 김씨의 시조를 거슬러 올라가 보면 이 가계가 우리 민족에게 얼마나 훌륭한 업적을 남겼는가를 쉽게알 수가 있다. 연안 김씨의 시조는 김 성한(金暹漢)씨로 황해도 연안군을 본관으로 하고 있다. 김씨의 본관록에 의하면 신라 김 알지 의 후예인 두 형제가 왕에게 직간을 하다가 미움을 받아 형은 북빈경 지금의 강릉에 살게되었고 동생은 시염성 지금의 연안에 살게되었다고 한다.
연안으로 유배된 아우의 후손으로 고려 명종 때 문과에 급제하여 국자감 사문박사를 지냈다. 이 가계에서는 고려말 부터 수도 없이 많은 정승을 배출했기에 다 기록을 할 수가 없다.
고려조를 이어 조선조에서도 7분의 영의정과 인목대비,즉 왕비를 배출하게 되는 등 정말 손으로 꼽을 수 있는 한국의 명문이다.
근세에는 15대 부총리겸 경제기획원 장관을 역임했던 김 원기 등이 이 가문에 속한다. 뿐만아니라 김 덕주 대법관을 비롯 김 우전, 김 여제, 김 창의, 김 기홍 등의 독립투사도 있다.
이 가계가 한국의 정관계에 기여한 것을 다 기록할 수 없고 또 옛 뿌리를 정확히 기록지 못하는 우를 범할까 두려움이 있기에 여기에서는 간단히 나의 친구 김 종국 회장에 관한 업적과 김 회장의 직계 조상에 관하여 간단히 피력코자 했다.
김 회장의 직계 조상은 세조 때 좌군사정공파 9형제중 셋째가 사육신 성삼문의 장인이 계유정난에 연류되어 9대 세형자 공이 가족을 데리고 영주 두암에 정착하게되었고 김 회장의 직계 조상임을 알 수 있다. 연안 김씨는 현재 전국에 10여개 이상의 집성촌에 산재해 살고 있다.
괴헌고택의 현 주소는 경북 영주시 이산면 두월리이다.
20년 12월에