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학교에서 괴롭힘을 당한 동료를 위해 뭔가를 해야겠다고 생각했다. 우리 두 사람의 아이디어와 행동은 놀라운 결과를 가져왔다.” 캐나다 전역에서 매년 전개되고 있는 학교폭력과 따돌림 예방을 위한 ‘핑크셔츠 캠페인’의 최초 제안자였던 데이비드 셰퍼드와 트래비스 프라이스의 말이다.
2007년 캐나다 노바스코샤의 한 학교에서 방학을 마치고 등교한 첫날 9학년(중 3) 남학생이 핑크색 셔츠를 입고 왔다. 이 남학생은 핑크색 셔츠를 입고 왔다는 이유만으로 괴롭힘을 당했다. 당시 12학년(고 3)이었던 셰퍼드와 프라이스는 이 괴롭힘과 폭행을 목격한 후 작은 캠페인 하나를 생각해 냈다. 이들은 학교를 마치고 마트에 가서 50벌의 핑크색 셔츠를 구매한 후 학교 친구들에게 캠페인 참여를 독려하는 메시지를 보냈다. 다음날 아침 등교할 때 함께 핑크색 셔츠를 입자고 호소했다.
학생들이 주도한 이 작은 캠페인 이후 학교에서의 괴롭힘은 사라졌다. 이 소식은 소셜미디어를 통해 지역사회와 대중에게 알려졌고 ‘핑크의 바다(sea of pink)’를 만들자는 제안으로까지 발전했다. 그 결과 교육청과 주 정부, 더 나아가 캐나다 전역에서 이 활동에 공감해 매년 2월 마지막 주 수요일을 ‘핑크셔츠의 날’로 지정했다.
코로나로 온라인 괴롭힘 70% 급증
올해는 2월 24일 수요일이 14번째 핑크셔츠의 날이었다. 이날은 학생, 선생님 등 학교 관계자를 비롯해 시민들까지 자발적으로 핑크색 셔츠를 입거나 넥타이, 브로치, 가방 등 패션 아이템 중 하나를 핑크색으로 바꿔 캠페인에 참여한다. 거리를 다니다 보면 곳곳에서 핑크색이 목격되는데 이를 통해 학교폭력에 관한 경각심과 문제해결을 위한 지역사회의 연대의식을 확인할 수 있다.
이 캠페인은 2008년 캐나다 밴쿠버의 라디오 방송국 CKNW가 중심이 되어 학교폭력과 따돌림 방지를 위한 ‘키즈 펀드 기금’을 조성하면서 본격화했다. 기금 수익 100%는 학생들에게 상호배려와 공감 그리고 친절 등 기본적 소양을 가르치는 교육뿐 아니라 아이들의 자존감 회복을 위한 치료 지원에 쓰이고 있다.
소셜미디어를 통해 알려지면서 현재까지 180여개 국가의 개인이나 단체로부터 기부와 동참을 끌어냈다. 핑크셔츠 캠페인으로부터 영감을 받아 일본·뉴질랜드·중국·파나마 등 국가에서도 학교폭력 예방을 위한 모금 캠페인이 시작됐다.
지역사회가 중심이 되어 기금을 조성하고 글로벌캠페인으로까지 확산한 결과 밴쿠버를 중심으로 한 캐나다 서부지역에서만 240만 달러 이상이 모금되는 성과를 거두었다. 최근에는 티셔츠뿐 아니라 팔찌와 목걸이 등 다양한 굿즈도 매년 새롭게 제작되어 펀드 조성에 도움을 주고 있다.
그런데 올해 핑크셔츠 캠페인은 과거와 비교해 한 가지 차이가 있다. 무엇보다 온라인상에서의 괴롭힘과 따돌림, 일명 사이버 불링(cyber bullying)에 초점이 맞춰졌다. 코로나19로 비대면 수업이 확대되면서 온라인상 학생 간 괴롭힘이 70% 이상 급증했기 때문이다. 캐나다 온타리오주 킹스턴 청소년클럽(BGCK)이 자체 조사한 결과에 따르면 유치원부터 12학년(고 3)까지 학생 3명 중 1명이 사이버 괴롭힘의 피해를 경험했던 것으로 나타났다. 이미 10여 년 전부터 이 문제에 많은 관심을 두었지만, 어느새 미룰 수 없는 가장 시급한 과제로 떠오른 것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