엔지니어링 회사서 잘 나가던 남편 실직 후 홈 레노 업체 차리다

“내 영어를 못알아 들어?” -김희정의 유학•이민 25시 

아이들도 안정을 찾고 남편의 직장도 순조로와 직장내에서 승진도 했다. 내가 생활에 보태지 않아도 남편 혼자 버는 것으로도 살 수있게 되었다.

작은 아들은 카뎃을 통하여 정신적으로 육체적으로 많은 변화를 겪는 사춘기를 무사히 잘 보내고 큰아들은 아이비 코오스를 하면서 정신적으로 힘든 시기를 지냈다.

남편이 플로어 엔지니어링 회사로 이직을 하면서 우리는 경제적으로 더욱 나아지게 되었다. 그러면서 나는 점점 메너리즘에 빠지게 되었고 육체적으로나 정신적으로 스스로 나약해짐을 느꼈다.

여러번 수술을 겪고 교회활동과 아이들의 교육에 전념 하던중 교회에서 한인의 밤을 계획하고 준비하면서 한인여성회 고경숙 회장님과 인연이 닿게 되었다.

나는 그저 몇 벌 한국 무용복을 빌리려고 한인 아트클럽에 연락을 한 것인데 흔쾌히 와서 공연을 해주신다고 하여 얼마나 고마웠는지 모른다. 그 인연으로 한인여성회 부회장으로 활동을 하게되었다.

그러다 오일쇼크로 남편이 직장을 잃으면서 또 한번 걱변의 시간이 다가왔다. 남편은 이 기회에 자영업을 교외에서 찾고 싶어했다. 여러곳을 돌아다니며 사업을 하려고 다녀봤지만 막상 우리가 시작할 만한 사업을 찾을수가 없었다.

여러가지 재주가 많은 남편은 그동안 취미로 집을 고치는 일을 많이 했는데 그일 이 우리에게 비지니스 아이탬이 되어 다가왔다.

C&K home reno라는 비즈니스를 시작했다. 처음에는 customer를 찾는 것이 힘이 들었다. 여기도 경쟁이 치열했다. 수주 하러 가면 유엔총회라도 하듯 캐나다 중국 베트남 인도인 등 온갖 민족 사람들이 와 있었다.

남편의 사업은 시간이 가면서 자리를 잡아갔다. 초기에 육체적으로 너무 힘든 시기를 보내었지만 남편의 꼼꼼하고 성실한 일에 대한 자세는 사람들의 신뢰를 얻기 시작하고 주변에 입소문으로 자리매김을 하기 시작 하였다. CAD를 만들어 발주자들에게 자세한 설명을 해주는 핸디맨은 별로 없다.

그렇게 5년 이제는 제법 많은 분들이 전화를 주시고 작품 (우리는 각 집을 레노 하면서 그것을 작품이라고 생각한다)에 대한 신뢰을 보여주시니 정말 좋다. 책상매김이었던 남편도 역시 어느새 육체노동자 되어 페인트, 타일, 지하개발 배관 전기 등등 전천후의 기술을 익혀가고 있다.

본인으로서도 결정하기 어려운 일이 었을텐데 그리고 그일 하는 동안 얼마나 많이 심적으로나 육체적으로나 어려웠을까? 이제는 많이 숙련이 되어가고 있는남편을 보면서 이시기에 가정을 이끌고 있는 많은 이민 1세대의 가장들의 어려움과 고뇌을 이해하게 되었다.

나는 다시 내 사업인 영어 캠프사업을 시작했다. 그러는 동안 아이들이 대학을 졸업했다. 지금 생각해보면 아이들이 정말 잘 커준것에 대하여 감사한다. 비록 한국에서 말하는 변호사, 의사 등 그런 직업에 아이들이 일하고 있지는 않지만 자신들이 하고 싶은 일에 소신을 가지고 있다.

캐나다에 와서 살게 된 것에 대하여 감사 하고, 무엇이든지 할수있는 기회를 가지고 스스로 자립해야 한다는 생각과 부모로 부터 도움을 받는다는 것은 감사하는 정신을 갖고 살고 있다.

아직도 부모에게 어리광이나 부릴 한국기준으로 나이 22살 24살인데도 아이들은 내게 커다란 버팀목이 되어준다. 이것이 내가 캐나다에 온 가장큰 축복이 아닐까 생각한다.

여성회에서 일하면서의 기쁨은 바로 한인들에게 많은 활동을 선보이고 참여하게 하며, 활동을 통하여 캐나다사회에서 살아가는 방법을 알려주고 돕는 봉사의 기쁨이다.

이곳에 처음에 와서는 어리버리 잘 몰라서 당하고 찾아먹을것을 찾아먹지도 못하고 인종차별을 당해도 그저 무관심속에서 하루하루을 보냈다.

그러는 시간 동안 경험을 하게되고 그일들을 처리하기위하여 노력하면서 많은 것을 배워왔다. 내가 배운 지식과 경험을 한인 지역사회를 위해서 쓸수있도록 기회가 주어졌고 그 기회를 통하여 다른 커뮤니티와 소통하며 우리 사회는 얼마나 우물안 개구리 였는 가에대해서 생각해 보게 되었다.

예전에는 혼자서 도움을 주기위하여 노력 했지만 이제는 함께하는 방법을 배우고 다른 커뮤니티와 일하는 방법을배우고 더 나은 정보를 나눈다. 캐나다 21년! 공부한 기간까지 24년. 35년 동안의 교육생활 을 통하여 나는 무엇을 이루었는가? 라는 질문을 내게 던져본다.

아무것도 이룬것이 없다 라고 말할수 도 있지만. 눈에 보이지 않게 나는 주변을 변화 하는데 공헌을 했다고 말하고 싶다.

요즘은 캐나다인들에게 한국말을 zoom 으로 가르치는 일 을 하고있다. 캘거리에는 한국말을 배우고 싶어도 제대로 배울곳을 찾기힘들고 개인 과외비가 없어서 배우지 못하는 한인 2세, 한국인과 결혼한 캐나다인, k-pop에 관심있는 젋은 층들이 있다.

미흡하지만 열심히 가르치는 나에게 많은 호응과 사랑을 보내주었던, 그리고 보내주고있는 나의 사랑하는 제자들에게 감사하고 꾸준한 노력과 봉사 나 자신의 삶을 바꿀뿐만 아니라 우리의 주변 사람들의 삶을 바꾸게 한다는 것을 마지막으로 말하고 싶다.

캐나다에서 보낸 24년은 나의 격동적인 삶의 가장 중효한 부분이며 변화 이며 도전이었다. 그것이 역사에 큰 획을 긋던 않긋던 그것은 중요하지않다. 내가 처한 상황을 나는 얼마나 열심히 치열하게 고민하고 자신의능력을 시험하고 봉사하며 주변과 나를 변화 시켰는가 가 중요하다.

C&K 투어