영화제·TV서 거침없는 영어 화제
발음보다 주눅들지 않는 자신감
“근데 이번 영화는 하기 싫었습니다. 독립영화라는 걸 알았거든요. 그 말은 즉 제가 고생할 거라는 뜻이죠.”(I didn’t wanna do it. Because I knew this was going to be an independent movie. That means, I’m going to suffer with all the things.)
영화 ‘미나리’로 아카데미 여우조연상 후보에 오른 배우 윤여정이 지난해 초 선댄스영화제 Q&A 시간에 한 말이다. 농담조의 솔직한 고백에 객석에서 웃음이 터졌다. 어디든 저예산 독립영화의 제작 환경이 열악한 것은 뻔한 사실이라서다.
무대에 올라 소개받을 때부터 그는 좌중을 장악했다. 정이삭(리 아이작 정) 감독이 “한국에서 온 전설적인(legendary) 배우”라고 하자 “아이작, 전설적이란 말은 내가 늙었단 뜻이잖아(Isaac, ‘legendary’ means I am old)”등의 말로 무대 분위기를 반전시켰다.
연기 경력 56년 차, 74세 배우 윤여정이 이처럼 영어로 라이브 현장을 사로 잡은 게 화제다. 그는 1970년대 중반 가수 조영남과 결혼해 미국으로 건너가 아이 둘을 키우며 11년 살다 귀국한 것으로 알려진다. 그동안 TV 예능 ‘꽃보다 누나’ ‘윤식당’ ‘윤스테이’ 등에서 윤여정은 외국인과 자연스레 소통하는 모습을 과시해 왔다.
경력 22년 동시통역사 홍희연씨가 첫손 꼽은 윤여정의 능력은 미국인이 공감하는 유머 코드를 잘 안다는 것. 홍씨는 “한국인이 집착하는 문법과 발음보단 전달력에 집중하는 태도, 소통하려는 진솔함, 언어는 소통의 도구일 뿐이란 생각에서 나오는 주눅들지 않는 자신감이 사람을 끌어당긴다”고 했다. 출연 중인 한옥 체험 리얼리티쇼 ‘윤스테이’에서도 유머는 빛난다. 외국인 손님들이 오징어 먹물이 든 메뉴를 보며 “우리 독살하는 거 아니죠?”라고 짓궂게 묻자, 그는 “오늘 밤은 아니고, 내일은 모르죠(Not tonight, maybe tomorrow)”라고 답한다.
정작 윤여정은 자신의 영어를 박하게 평가한다. 한 인터뷰에서 그는 “남의 나라 말은 끝이 없다. 내가 거기서 태어난 사람이 아니면 완벽하게 할 순 없다. 그래서 ‘윤스테이’를 안 본다. 내가 틀린 거 알기 때문에. 틀린 걸 막 썼을 거다. 아우 짜증난다”고 털어놨다. 그럼에도 그의 화술이 언어 장벽을 뛰어넘는 것은 매순간 충실하기 때문일터다. ‘윤식당’에서 그가 손님들에게 자주 했던 말처럼. “우리는 프로 요리사가 아닙니다. 하지만 최선을 다했어요(We are not professional chefs but we did our best).”