주한 캐나다 대사관은 지난 8일 세계 여성의 날을 맞이해 한국 여권을 위해 기여한 캐나다 여성들을 소개하고 있다.
그 세 대사관은 지난 8일 세계 여성의 날을 맞이해 한국 여권을 위해 기여한 캐나다 여성들을 소개하고 있다.
여성들의 건강권과 여성 의료인 양성, 근대식 의료교육과 특수교육 발전에 앞장섰던 로제타 홀 박사, 구한말부터 36년간 공주와 충남지역에 유치원 7곳, 여학교 9곳 등 20여 개 교육기관을 설립해 초등교육을 받지 못했던 부녀자와 소녀들을 위한 야학을 개설한국 여권신장에 기여한 선교사 앨리스 샤프에 이어 그 세 번 째 인물로 16일에는 한국에 대한 사랑이 남달랐던 의료선교사 플로렌스 제시 머레이 박사(1894-1975)를 소개했다.
[제시 머레이 박사]
캐나다 노바스코샤에서 태어나 달하우지대학교 의과대학을 졸업한 머레이 박사는 1921년 27세의 젊은 나이로 의사이자 선교사로 조선으로 향하는 배에 올랐다.
한국이름 ‘모례리’로 불린 머레이 박사는 한국에서의 초창기를 함흥 제혜병원에서 보냈다. 당시 의사조차 꺼려하던 결핵과 나병환자들을 직접 돌보며 결핵요양소를 차리고, 간호사 양성소를 개설하여 정식 교육을 받은 간호사들을 양성했다.
일제 점령(1942)과 한국전쟁(1950) 당시 머레이 박사에게 캐나다로 돌아가야만 했지만 매번 다시 한국으로 돌아왔다. 1947년 다시 한국에 돌아온 머레이 박사는 이화여대의대의 부학장으로 병원의 의료 프로그램을 복원하고 설립하는 것을 도왔고 세브란스 병원의 부원장을 역임했다. 1951년, 머레이 박사는 한국전쟁 와중에 한국으로 돌아와서 병원을 복구하고, 환자를 치료하고, 학생들을 가르치고, 고아들을 돌보았다.
1959년, 머레이 박사는 지금의 연세대학교 원주캠퍼스인 원주연합기독병원을 설립했다. 그녀의 재임 기간 동안 머레이 박사는 한국 최초의 현대적 의무기록시스템(Unit Numbering System)을 세우는 일에 전념했다. 머레이 박사는 의사의 서명과 기록일지 작성의 중요성을 강조했다고 전해진다. 그녀가 세운 당시 의무기록실 시스템은 한국의 병원들의 모델이 되었다.
머레이 박사는 1951년, 1961년 한국정부로부터 두 번의 훈장을 수여했다. 또, ‘내가 사랑한 조선’, ‘리턴 투 코리아’ 2권의 저서를 통해 한국에서의 삶을 회고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