KIST 청경채로 매니토바 오지 원주민 돕는다

캐나다 중부 매니토바주 위니펙에서 차량으로 7시간 거리에 있는 오퍼스콰이어크 원주민 마을. 이곳에 사는 주민은 캐나다인 평균보다 비만·당뇨·고혈압 발병률이 2배가량 높다. 55세 이상 인구만 놓고 보면 당뇨와 고혈압이 각각 5배, 3배 많이 발병한다.

연중 6개월간 영하 40℃를 넘나드는 기후 특성이 영향을 미쳤다. 혹한의 날씨 때문에 오퍼스콰이어크 원주민 자치구에선 채소 재배가 힘들다. 상추 3~4장이 3캐나다달러에 팔릴 정도다.  

채소 섭취가 부족한 식습관은 비만·당뇨·고혈압 같은 대사성 질환과 관련이 있다. 과식하면 많은 음식물이 에너지로 변환돼 지방 성분이 혈액에 쌓이고, 잡곡·채소 등을 꾸준히 섭취하면 지방 분해를 촉진하는 식이다. 채소 섭취가 힘든 지역에 사는 원주민은 대사성 질환 발병률이 높다. 

KIST, 비만·당뇨 잡는 청경채 개발

그런데 한국과학기술연구원(KIST)이 이들의 건강 유지를 돕는 채소를 개발했다. 정부 연구기관인 KIST가 태평양 건너 9500㎞ 떨어진 원주민 마을의 요청을 받아들인 데는 사연이 있다. 

캐나다 원주민 마을은 2014년 한국에 ‘구조 요청’을 보냈다. 한·캐나다 자유무역협정(FTA) 체결을 계기로 매니토바주 세계무역센터(WTC)가 경북테크노파크를 방문했는데, 이때 식물공장 전문업체인 카스트엔지니어링을 둘러보고 오퍼스콰이어크 원주민 마을에 식물공장 설립을 제안했다. 카스트엔지니어링은 KIST에 협력을 요청했다.  

KIST와 만난 오퍼스콰이어크 원주민은 “10대 청소년 중 13~20%가 소아비만·당뇨를 겪는다”며 “더는 아이들을 (대사성 질환 때문에) 땅에 묻고 싶지 않다”며 연구를 의뢰했다.

KIST는 캐나다 원주민이 주로 섭취하는 청경채의 성분을 개선하고 생산량을 확대하는데 성공했다. [중앙포토]


이때 KIST가 주목한 게 청경채다. 박재억 KIST 천연물연구소 선임전문원은 “캐나다 원주민이 주로 섭취하는 청경채에 대사성 질환 예방·개선에 효과가 있는 글루코시놀레이트 성분이 있다는 것을 알게 됐다”며 “이를 안정적으로 생산할 수 있는 재배 기술 개발에 돌입했다”고 설명했다. 배추의 일종인 청경채가 함유한 글루코시놀레이트(Glucosinolate)는 지방 축적을 억제하고 염증을 낮추는 역할을 한다.

항비만·당뇨 성분 2.4배…생산량 2배로 

KIST 연구진은 스마트팜(smart farm·지능형 농장)을 만들어 배양액·광조건 등의 재배 조건을 달리하며 최적의 청경채 생장 환경을 찾았다. 청경채가 함유한 글루코시놀레이트 함량을 2.4배가량 높이면서, 동시에 생산량을 2배 이상 늘렸다. 쉽게 말해 ‘수퍼 청경채’인 셈이다. 

연구 결과는 농·식품 분야 국제학술지 ‘푸드케미스트리(Food Chemistry)’ 최신호에 실리면서 학문적으로 인정받았다. 향후 캐나다 매니토바주립대는 KIST 기술을 활용해 실증 재배에 돌입하고, 캐나다 원주민을 대상으로 인체 적용 시험을 진행한다.

KIST가 개발한 청경채가 대사성 질환을 낮춘다는 점을 증명하면 캐나다 원주민들은 이를 공장에서 대량생산해 판매할 계획이다. [중앙포토]

기능성 청경채가 인간의 대사성 질환을 실제로 낮춘다는 사실을 밝혀내면 제품 개발에 돌입한다. 오퍼스콰이어크 원주민은 ‘오퍼스콰이어크 원주민 마을 스마트팜(OCNS)’이라는 법인을 설립해 사업화를 준비하고 있다. 원천기술(KIST) 확보에서 제품 개발(매니토바주립대)→생산·판매(OCNS)로 이어지는 것이다.

유지혜 KIST 천연물연구소 선임연구원은 “기능성 음료나 농축 파우더 등 알약 형태의 제품, 혹은 샐러드 제품에 들어가는 원료로 KIST가 재배한 스마트팜 청경채가 사용될 예정”이라고 설명했다.

KIST는 청경채 이외에도 다양한 채소에 비슷한 기술을 적용하는 연구를 진행 중이다. 유지혜 선임연구원은 “브로콜리·새싹삼 등 인공광을 활용해 키울 수 있는 다양한 채소에 비슷한 기술을 적용할 수 있다”고 말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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