40L 물통 지던 소녀, 필리핀 사상 첫 금메달

필리핀의 ‘역도 영웅’ 하이딜린 디아스(30)가 도쿄 올림픽에서 필리핀 역사상 첫 금메달을 따며 새 역사를 썼다. 디아스가 흘린 감격의 눈물에 필리핀 국민도 함께 울었다.
디아스는 지난 26일 2020 도쿄올림픽 역도 여자 55㎏급 A그룹 경기에서 인상 97㎏, 용상 127㎏으로 합계 224㎏을 들어 올리고 시상대 가장 높은 곳에 우뚝 섰다. 2016 리우데자네이루 올림픽에서 은메달을 딴 ‘필리핀 역도 영웅’ 디아스는 5년 만에 은메달의 한을 풀었다.
디아스는 2008년 베이징 올림픽에서 필리핀 여자 역도 선수 중 최초로 올림픽 무대를 밟았다. 이후 자신의 3번째 올림픽이었던 2016년 리우 올림픽에서 은메달을 따내며 필리핀 역도 사상 첫 올림픽 메달리스트가 됐다. 당시 그가 따낸 은메달은 필리핀이 20년 만에 올림픽에서 획득한 메달이었다.
디아스의 역도 인생은 한 편의 드라마다. 필리핀에선 그의 삶이 단막극으로 제작되기도 했다. 디아스는 필리핀 삼보앙가에서 6남매 중 다섯째로 태어났다. 디아스는 지독한 가난 탓에 물 40ℓ를 지고 수백 미터를 걸어야 했다. 아버지는 트라이시클(삼륜차) 기사부터 농부, 어부 등 여러 직업을 전전했다. 디아스의 어린 시절 꿈이 은행원이었던 건 찢어지게 가난한 집안 사정과 무관치 않았다.

2016년 리우 올림픽에서 은메달을 따내며 국민적인 영웅으로 떠올랐지만 역경은 거기에서 끝나지 않았다. 2년 전에는 로드리고 두테르테 대통령이 그를 ‘블랙리스트’에 올려 자신은 물론 가족까지 생명의 위협을 느껴야 했다.

훈련 경비도 늘 부족해 대기업과 스포츠 후원가들을 찾아다니며 지원을 요청해야 했다. 지난해 2월에는 중국인 코치의 조언을 받아들여 말레이시아로 전지훈련을 떠났지만 코로나19 사태가 터지면서 체육관 출입조차 못 하게 됐다. 가족과도 멀리 떨어진 그곳에서 디아스는 수개월 동안 숙소의 좁은 공간에서 역기를 들어 올리며 꿈을 포기하지 않았다.

모든 시련을 이겨낸 디아스에게는 두둑한 보상이 기다리고 있다. 필리핀 정부와 몇몇 기업은 디아스에게 3300만 페소(약 7억5000만원)의 포상금과 집을 선물하겠다고 약속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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