마이클 스패버(46). 북한 김정은 위원장의 캐나다인 ‘절친’이다.
그는 캘거리에서 태어났다. 어린 시절 마이클은 다른 많은 캘거리청소년처럼 보이스카우트와 하키를 하고 피아노 레슨도 받았다.
그의 부모들은 그에게 세상에 대한 호기심을 갖고 다른 문화에 감사하라고 가르쳤다.
그의 호기심과 여행벽은 1997년 한국서 3개월 이상의 워킹 홀리데이 여행을 다녀온 이후 인생진로를 바꾸어버렸다.
캘거리대학교에서 한반도와 동아시아를 중심으로 국제관계학 학위를 받은 그는 뒤에 강원대학에서 석사학위를 받았다. 프랑스어와 한국어에 능통하다. 북한 사투리도 잘한다.
이후 한국관광공사와 서울관광공사에서 일했다. 2010년부터 2013년까지 왕립아시아학회 한국지부 평의원으로 활동하며 강연과 문화유람을 주도했다. 1988년 올림픽 개막식에서 연주자이기도 했다
그는 서울 서부 북아현동의 한옥을 복원하고 생활하며 주목받았고 K-pop 그룹 SES의 뮤직비디오에 출연하기도 했다.
그는 한국을 매우 사랑한 인물이다. 스페버가 북한까지 사랑하게된 것은 적어도 2001년으로 거슬러 올라간다.
스패버는 2010년부터 2013년까지 북한 주민 교육 교류를 조직하고 해외 북한 학생들에게 장학금을 제공하는 캐나다 비영리 단체인 평양 프로젝트에서 일했으며, 2015년에는 백두문화교류소를 설립했다.
2005년 밴쿠버에 본부를 둔 한 NGO의 상무이사가 되어 평양의 한 부속학교에서 교사로 6개월을 근무했다. 같은 해 그는 평양에서 미국 망명자 제임스 조셉 드레스녹을 만났다.
북한 김정일이 2011년 12월 급서한 뒤 김정은이 20대 젊은 나이에 권력을 잡는다. 한동안 이렇다할 외부 활동은 자제하며 소위 ‘잠수’를 타다 2013년 9월, ‘(농구) 코트의 악동’으로 불리는 미국 NBA의 데니스 로드맨 선수가 돌연 평양을 방문한다.
농구광인 김정은 위원장의 초청으로 로드맨은 국빈급 환대를 받았다. 이때 다리 역할을 했던 인물이 스패버이다. 로드맨이 방북했을 때 통역도 맡았다.
김정은 위원장의 고향 격인 원산 특각에서 제트스키도 타고, 여동생 김여정 현 노동당 제1부부장과, 부인 이설주 역시 만나 화기애애한 식사도 했다고 한다.
스패버 김정일 전 일본 초밥 요리사 후지모토 겐지와 친구다. 2016년 초 일본에서 처음 만났고 2016년 4월 다시 만났다.
이런 스패버가 돌연 2018년 12월, 중국에서 체포된다. 그는 북한에 언제든 갈 수 있도록 북ㆍ중 접경 도시인 단둥에 살며 북한 관광 사업 등을 해왔다.
중국 당국이 그에게 적용한 혐의는 ”외국을 위해 정탐하고 국가기밀을 불법 제공했다“는 것이었다. 그리고 지난 11일, 중국 단둥시 중급인민법원은 그에게 11년형과 함께 그의 재산 5만위안(약 890만원)의 몰수 및 국외 추방을 명했다.
스패버가 중국에 산 것은 하루이틀이 아니다. 중국과 한국을 오가며 강산이 한 번 바뀌는 이상의 시간을 살았습니다. 그런데 왜 갑자기 그를 스파이 혐의로 체포했을까. 국제사회는 화웨이 창업주의 딸이자 재무책인자인 멍완조우의 밴쿠버 구금에 대한 보복이라고 해석한다.
스패버를 수 차례 설득한 끝에 2017년 봄엔 일본 도쿄에서, 2018년엔 서울 광화문에서 두 번 만나 인터뷰를 한 전수진 월간중앙 기자는 그가 신중에 신중을 더하는 캐릭터였다고 설명한다.
서울 한복판에서 아메리카노 커피를 마시면서도 김정은에 대해서 ‘김 장군(Marshall Kim)’이라고 깍듯이 불렀다고 한다.
2017년 도쿄에선 당시 북한의 핵ㆍ미사일 실험으로 인해 국제사회가 대북 제재망을 좁혀오자, 대안으로 외국인의 대북 관광을 모색하고 있다는 얘기도 했다. “북한의 발전을 위한 비전이 내겐 있다”며 “이건 북한뿐 아니라 한반도 전체를 위해 도움이 될 것”이라고 눈을 반짝이던 그의 모습이 떠오른다고도 했다.
스패버가 태양이 궁금해 너무 가까이 날다가 태양의 열에 날개가 녹아버린 이카루스 같은 존재가 되어버린 꼴이다.
어머니가 위독해 고향으로 돌아온 적은 있으나 그가 결혼을 했는 지 가족이 있는지도 잘알려져있지 않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