긴 겨울잠을 잔 땅이 천천히 깨어나는 계절, 봄은 사람을 신나게 만든다. 그렇게 꽝꽝 얼었던 땅 안에서 기특하게 살아남은 뿌리들이 조금씩 깨어나면서 새싹을 내보내기 때문이다.
수줍게 올라오는 작은 크로커스나, 우아하게 뽐내며 고개를 흔드는 수선화도 아름답지만, 별로 신경 쓰지 않고 던져둔 작은 채소들도 속속들이 녹색을 자랑한다. 세상의 모든 아기는 다 예쁜 것처럼, 심지어 잡초도 새싹은 예쁘게 생겼다.
캐나다에 살고 있지만, 그래도 우리 집 한 귀퉁이에는 한국 풀이 무성하게 자라고 있다. 뭐가 잘 자랄지 어떨지도 모르면서 무작정 탐이 나서 구해다가 화단에 그냥 던져 놓은 것들이 튼실하게 자리를 잡았기 때문이다.
처음에는 비실비실 힘을 못 쓰는 것 같았던 머위도 겨우내 땅 밑으로 뿌리를 뻗고 여기저기서 싹을 펼쳐 번식력을 과시하였고, 그 옆으로 참나물과 돌나물, 쑥이 온통 뒤섞여 올라왔다. 원래는 각각의 자리가 있었지만, 모두 뿌리로 왕성하게 번지는 종류이기 때문에 어느새 서로 뒤엉켜서, 서로 질세라 뻗어 올라오고 있다.
며칠 전에는 머위 잎을 좀 뜯어서 먹었는데 이번엔 쑥을 뜯었다. 작년에 너무 늦게 쑥을 구해 잎이 억세진 탓에 보드라운 쑥국이나 쑥떡은 먹어보지도 못한 것이 못내 아쉬웠기 때문에 며칠 전부터 벼르고 있었다.
그런데 막상 뜯으려니, 평생 도시에서 자란 나는 쑥을 직접 뜯어본 적이 없었다. 그야말로 서울 촌뜨기인 것이다. 음! 이걸 어떻게 자른담. 내 집에서 기르는 녀석이니 어쩐지 안쓰러워서 자신 있게 자르지를 못하고, 가운데를 남겨둔 채, 상추나 파슬리 자르듯 가장자리의 잎들을 잘라냈다.
그러다 보니, 이거 어느 세월에 한 소쿠리 모으나 싶어졌다. 다시 생각해보니, 쑥은 잡초처럼 쑥쑥 크는데, 잡초를 자른다고 죽을 리가 만무하다는 생각이 들었다. 결국 가위는 치우고 손으로 뜯기 시작했다. 왜 쑥을 자른다고 안 하고 뜯는다고 했겠는가. 대충 잡아 뜯으니 줄기보다는 잎이 손으로 따라왔고, 자연스럽게 가운데 생장점보다는 가장자리의 더 큰 잎들이 수월하게 따졌다.
어느덧 한 끼 먹을 만큼의 양이 넉넉히 모인 쑥을 들고 부엌으로 들어왔는데, 그전날 동호회장님이 나눠줘서 포기 나눔 하느라 잘라놓은 부추도 생각이 났다. 그래서 두 가지 전을 부쳐야겠다 싶었다.
들어와 보니 양파가 딱 한 개 남았고, 고추는 하나도 없고… 뭘로 전을 부치지? 그러다 생각하니, 겨울 동안 실내에서 열려서 우리를 즐겁게 했던 꽈리고추가 빨갛게 익었다는 것이 생각났다. 관상용으로 그대로 즐기고 있었지만, 이제 따서 먹어야 할 때라는 생각이 들었다.
쳐다보며 아깝다 싶다 생각하다가, 그냥 따와서 총총 썰었다. 그리고 오징어 한 마리를 손질해서 썰고, 하나 남은 양파도 가늘게 채를 썰었다. 저녁은 이걸로 간단하게 해결할 참이었다.
우리 집은 남편이 밀가루를 못 먹기 때문에, 나는 대체 가루를 사용한다. 글루텐프리 대체 가루에 타피오카 가루를 섞어서 사용하면 시판되는 튀김가루 부럽지 않은 전을 부칠 수 있다. 밀가루를 못 먹는 것이 그리 아쉽지는 않다. 나는 전에 가루가 많아서 찐득하고 꾸덕한 것이 싫기 때문에, 가루는 정말 최소화해서, 재료가 간신히 붙을 만큼만 사용한다.
바삭함을 위해서 재료들은 반드시 물기를 빼준다. 우리 집은 키친타월 사용을 최소화하기 때문에, 마른행주를 사용해서 쑥과 부추 씻은 물기를 닦아줬다. 그리고 글루텐프리 가루를 넣고 한번 흔들어줘서 남은 물기도 모두 제거해줬다.
쑥은 향기를 살리기 위해서 양파만 조금 넣었고, 부추에는 오징어와 고추를 넣었다. 해산물은 성질이 차기 때문에 부추같이 약간 열한 채소를 함께 사용하면 음식 궁합을 잘 맞출 수 있다.
프라이팬을 잘 달구고, 팬에 기름을 넉넉히 두른 후에 재료를 얹어 동그라게 모양을 잡아주면서 부쳐준다. 기름이 부족하면 바삭하게 구워지지 않는다. 나는 가루에 물을 섞을 때, 달걀흰자도 함께 섞어서 바삭함을 더해주는데, 이때 빼놓은 노른자는 위에 뿌려서 장식을 해주면 좋다. 전 두 개를 부친다고 마음이 바쁜데 딸에게서 전화가 오고, 작업하던 거 같이 봐주느라 혼을 빼앗겨서 부추전이 살짝 탔다.
그래도 완성해서 상에 올리니 바삭하고 맛있었다. 고추 장아찌 해놓은 것이랑 달래장이랑 곁들여서 저녁을 간단히 해결했다. 그러고도 쑥이랑 부추가 남아서 오늘은 남은 부추로 오이 섞어 무침을 간단히 하고, 쑥은 느낌을 바꿔서 마른 새우를 함께 넣어 전을 부쳤다. 촉촉한 재료로 전을 부쳐도 좋지만, 이렇게 마른 재료를 넣으면 바삭한 식감을 살리는데 더없이 좋다.
그래도 완성해서 상에 올리니 바삭하고 맛있었다. 고추 장아찌 해놓은 것이랑 달래장이랑 곁들여서 저녁을 간단히 해결했다. 그러고도 쑥이랑 부추가 남아서 오늘은 남은 부추로 오이 섞어 무침을 간단히 하고, 쑥은 느낌을 바꿔서 마른 새우를 함께 넣어 전을 부쳤다. 촉촉한 재료로 전을 부쳐도 좋지만, 이렇게 마른 재료를 넣으면 바삭한 식감을 살리는데 더없이 좋다.
이런 식사에서 가장 호사스럽다고 느껴지는 부분은, 갓 딴 한국 채소로 상을 차리는 것이다. 한인 마트를 기웃거려, 한국에서 날아온 오래된 것을 집어 든 것이 아니라, 아직도 그 잎이 숨을 쉬는 그런 것을 상 위에 올린다는 것이 나는 아직도 꿈처럼 짜릿하다. 한국을 가슴에 품은 것처럼 말이다.
재료: 쑥, 부추, 튀김가루, 물, 달걀, 양파, 빨간 고추, 오징어, 마른 새우
1. 부침 재료는 시판 튀김가루나 부침가루를 이용하면 쉽다. 밀가루를 못 먹는다면, 글루텐프리 가루에 타피오카 가루를 1:1로 섞어주면 튀김가루와 비슷한 결과를 얻을 수 있다.
2. 가루와 물의 비율은 1:1로 하되, 물의 일부 대신에 달걀흰자를 이용하면 더욱 바삭한 전을 부칠 수 있다.
3. 쑥이나 부추는 깨끗하게 여러 번 씻은 후, 마른행주로 물기를 완전히 말려줘야 바삭한 전을 부칠 수 있다.
4. 양파를 가늘게 채 썰어 섞어서, 달궈진 팬에 기름 넉넉히 두르고 부친다.
5. 취향에 따라 손질한 오징어나 건새우를 얹고, 색을 내기 위한 붉은 고추를 얹으면 더욱 좋다.
(출처 오마이뉴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