106년 만의 사죄… 트뤼도 “흑인 참전용사 외면한 캐나다 잘못”

“이 애국자들의 후손께 사죄의 말씀을 드립니다. 국가로부터 마땅히 받았어야 할 대우와 보살핌, 지원, 그리고 존중을 받지 못했습니다. 정부 책임자로서 죄송할 따름입니다.”

쥐스탱 트뤼도 캐나다 총리가 9일 캐나다군 흑인 장병들의 후손 앞에 고개를 숙였다. 제1차 세계대전 당시 캐나다군 일원으로 프랑스 전선에서 싸웠으나 흑인이란 이유로 보훈 대상자가 되지 못하고 아예 역사에서 지워진 이들의 명예를 100여년 만에 회복시킨 것이다. 쥐스탱 총리는 “과거를 거울 삼아 더욱 포용적인 캐나다를 건설해 나가겠다”고 다짐했다.

이날 캐나다 동부 노바스코샤주(州) 트루로에선 트뤼도 총리, 애니타 아난드 국방장관 등이 참석한 가운데 ‘제2공병대대’ 부대원을 대상으로 한 조직적 인종차별에 대한 연방정부 차원의 공식 사과 행사가 열렸다. 제2공병대대는 1916년 7월5일 노바스코샤에서 창설됐고 트루로에 본부를 뒀다. 당시는 유럽에서 1차대전이 한창이었고 그때만 해도 영국 자치령이던 캐나다는 영국을 돕기 위해 참전했다. 제2공병대대의 특징은 부대원 거의 대부분이 흑인이었다는 점이다.

인종차별이 극심하던 시절이라 백인과 흑인이 한 부대에 나란히 속해 섞여 있다는 건 상상하기 힘들었다. 실은 1차대전 발발 후 수많은 흑인이 “전쟁터에서 싸우고 싶다”며 자원입대 의사를 밝혔으나 캐나다 정부는 “흑인에겐 전투 임무를 부여할 수 없다”며 거부했다. 이렇게 해서 제2공병대대는 캐나다 역사상 최초이자 또 유일한 흑인 부대가 되었다.

물론 흑인에겐 지휘도 맡길 수 없다는 이유로 제2공병대대 대대장을 비롯한 지휘부는 모두 백인 장교들이 차지했다. 흑인 장교는 윌리엄 앤드루 화이트라는 이름의 목사(군종장교)뿐이었다. 오랜 기간의 훈련을 받고 1917년 3월 유럽으로 떠난 제2공병대대는 프랑스 전선에 배치돼 참호를 파고 병참용 철도를 건설했다. 무기와 각종 장비 제작에 필요한 목재를 조달하기 위해 대규모 벌목작업에 동원되기도 했다. 다만 그들은 인종차별 탓에 최전방 임무에는 투입되지 못하고 항상 후방만을 지켜야 했다.

쥐스탱 트뤼도 캐나다 총리(왼쪽)가 지난 9일(현지시간) 노바스코샤주 트루로에서 과거 제1차 세계대전에 참전했으나 흑인이란 이유로 공적을 인정받지 못한 제2공병대대 부대원의 후손과 만나 악수하고 있다. 트루로=AP연합뉴스
1918년 전쟁이 끝난 뒤 백인 장병들 중 유공자는 훈장과 포상을 받았고 기타 참전용사들도 보훈 대상자가 되었다. 하지만 제2공병대대는 아무런 보상도 받지 못하고 종전과 동시에 해산됐다. 캐나다 정부는 이들의 복무나 희생을 전혀 인정하지 않았다.

제2공병대대의 공식적인 복권은 부대 창설 후 106년 만인 올해 들어서야 겨우 이뤄졌다. 캐나다 정부는 제2공병대대의 공훈을 소급해 인정하고 캐나다군 역사에도 그 존재를 정식으로 편입시켰다. 또 내년 중으로 이들을 기리는 기념은화를 주조해 발행키로 했다.

이날 트뤼도 총리는 캐나다 정부를 대표해 제2공병대대원 후손들에게 사과했다. 그는 1차대전 당시 제2공병대대에 복무했던 이들을 “역경에 맞서는 결단력과 강인함을 갖춘 캐나다의 영웅들”이라고 치켜세웠다. 이어 “우리는 과거로부터 배워야 한다”며 “캐나다는 모든 형태의 체계적인 인종차별, 외국인 혐오 등에 맞서야 한다”고 강조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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