원유·가스 얻고 탄소 저장하고…캐나다 탄소저장 키워드는 ‘경제성’

캐나다 로키산맥의 비경인 레이크 루이스는 9월 중순 관광객들로 북적였다. 레이크 루이스를 둘러싸고 있는 거대한 산줄기는 고생대 때 바다였던 지역으로 대부분 퇴적암으로 구성돼 있다. 산맥 위에 쌓인 빙하에서 생성된 퇴적물과 섞인 레이크 루이스는 에메랄드 빛을 띠고 있다.

호수 옆편으론 관광객들이 다니지 않는 샛길이 있다. 1시간쯤 험준한 길을 따라 올라가면 산 중턱에 잘게 쪼개진 암석 무더기가 나타난다. 퇴적암 중에서도 촘촘한 입자를 가진 암석 셰일이다.

진흙 등이 굳어져 형성된 이암의 한 종류인 셰일은 저류층에 저장한 탄소를 영구적으로 봉인하는 덮개암의 역할을 한다. 덮개암은 지중에 저장된 탄소가 새어나오지 못하도록 촘촘한 입자로 이뤄져야 한다. 퇴적암 중에서도 덮개암에 적합한 암석은 제한적인데 셰일은 덮개암에 적절한 암석이다.
셰일이 중요한 또 다른 이유는 가스층이다. 셰일은 모래나 진흙이 열과 압력을 받아 퇴적되는 과정에서 발생한 탄화수소를 머금고 있다. 신에너지원으로 주목받는 셰일가스다. 천연가스를 채취한 뒤 생기는 빈 공간은 탄소를 저장하기에 적합한 장소다. 에너지원 탐색과 탄소의 처리를 동시에 모색할 수 있는 것이다.

캐나다 앨버타주와 브리티시컬럼비아주를 가로지르며 미국 남부까지 4500km에 걸쳐 이어지는 로키산맥 곳곳에는 셰일의 파편이 지상으로 삐져나와 있다. 캐나다 정부가 탄소 포집·활용·저장 (CCUS)기술을 바탕으로 2050년까지 탄소중립(넷제로)에 도달하겠다고 선언한 자신감 뒤에는 이같은 자연환경 조건이 뒷받침하고 있다.

● 탄소중립에 최적인 환경이지만 경제성 확보가 ‘열쇠’
천혜의 환경을 갖춘 캐나다지만 넘어야 할 산은 많다. 문제는 경제성이다. 통상 탄소를 포집하는 데 필요한 비용은 t당 70달러(약 9만9428원) 정도다. 2019년 국내에서 배출된 탄소만 7억t이 넘는다. 정부와 전문가들은 포집비용을 t당 30달러(약 4만2630원) 정도까지 낮춰야 이 기술을 실제 활용할 수 있을 것으로 본다.

탄소를 저장하는 과정에서도 적잖은 비용이 발생한다. 탄소를 주입할 수 있는 지층을 확인하고 공간을 확보한 뒤 주입시설을 설치해야 한다. 대규모 작업이 이뤄지기 전 얼마나 많은 탄소를 저장할 수 있는지 미리 예측하는 과정도 필수적이다. 대기오염의 주범인 탄소를 처리하기 위한 포집·저장 기술에 각국과 산업계가 주목하고 있지만 일각에선 회의적인 시각이 나오는 이유에는 이같은 비용에 대한 고민이 있다. 로키산맥에서 차로 2시간 정도 떨어진 곳에 있는 캐나다지질조사국(GSC) 캘거리지소는 탄소 포집과 저장 그리고 활용까지 전 과정에 걸쳐 비용을 절감하기 위한 연구가 다방면으로 수행되고 있었다.

●탄소처리 후 획득할 수 있는 자원 컴퓨터 모델링으로 계산
탄소저장에서 발생하는 막대한 비용을 회수할 수 있는 대표적인 방안으로는 석유회수증진법(EOR)이 꼽힌다. 탄소를 저장하기 적합한 암석에는 입자가 촘촘하지 않은 공극이 형성돼 있다. 보통 원유나 천연가스가 채워져 있다. 탄소를 저장하면서 이곳에 저장된 원유 등을 획득하는 것이다.
그러나 실제 탄소를 암석 안으로 밀어넣는 과정에선 많은 변수가 생긴다. 탄소에 영향을 받은 광물들의 성질이 변화하면서 저장에 적합하지 못한 환경이 될 수 있다. 또 탄소를 밀어넣는 대신 획득할 수 있는 원유의 양도 가늠하기 어렵다.
오미드 아다카니 GSC 연구원은 “통상 탄소 저장고에서 석유의 회수율은 10% 미만이며 그나마도 회수율을 유지하는 것은 쉽지 않다”며 “막대한 비용이 드는 탄소저장 작업이 이뤄지기 위해 획득 가능한 원유량을 가늠하는 것은 매우 중요하다“고 말했다. 이어 “탄소를 저류층에 저장했을 때 안정적인 환경이 유지될 수 있는지 확인하기 위해 컴퓨터 모델링을 통한 예측이 이뤄지고 있다”고 말했다.

● CCUS 최근 트렌드 ‘광물탄산화’ 연구도 진행
보다 효과적인 탄소저장법에 대한 연구도 이뤄지고 있다. 탄소를 광물로 전환하는 ‘광물탄산화’는 최근 학계의 주목을 받는 저장법 중 하나다. 이렇게 만들어진 광물은 산업자재 등으로 활용될 수 있다. 이 방법 역시 탄소의 전환율이 낮아 상용화가 이뤄지기 어렵다는 난점이 있다.
광물탄산화는 염분이 높은 물에 전기처리를 통해 탄소를 포집하고 이를 탄산마그네슘과 같은 미네랄로 전환하는 식으로 이뤄지는데, 이 과정에서 각 성분이 서로 충돌을 일으키면서 전환율이 저하되는 경우가 있다. GSC에서 광물탄산화 전환 효율성을 제고하는 방법을 모색하는 데니스 청칭 GSC 연구원은 “최근 연구에선 탄산화 각 과정을 순차적으로 분리하는 방식을 통해 전환율을 3배 넘게 향상시킬 수 있음을 확인했다”며 “공정 자체에 필요한 비용도 크지 않아 실제 활용가능성이 높은 것으로 평가된다”고 소개했다.

●탄소에서 얻을 수 있는 자원의 새로운 가능성, 지열에너지
GSC에서 지금 가장 주목받는 연구는 저류층에 저장된 탄소를 지열에너지로 전환하는 것이다. 지열에너지를 지표면으로 가져오기 위해선 저류층에 있는 바위에 물을 주입하는 방식이 사용된다. 이 때 탄소를 함께 사용하면 열을 훨씬 더 효율적으로 운반할 수 있다. 탄소를 주입하고 주입된 탄소가 열을 밀어올리는 선순환을 통해 경제적인 지열에너지 생성 구조를 조성한다는 구상이다.
탄소를 활용한 지열에너지 생성법은 먼저 탄소를 저장할 수 있는 가장 낮은 지층에 파이프를 통해 탄소를 주입한다. 밀려 내려간 탄소는 열을 생산한다. 이렇게 발생한 열에너지는 다른 표면을 통해 지상으로 배출된다. 탄소를 이용한 지열에너지를 생산하기 위해서 가장 중요한 것은 적합한 저류층을 찾는 것이다. 지열이 발생하는 과정에서 발생하는 고온을 견딜 수 있는 암석층이 필요하기 때문이다.
스티브 그래스비 GSC 연구원은 “캐나다 서부 지역에는 4km의 침하가 이뤄져 있어 깊은 곳에서 탄소를 활용한 지열에너지 발전 작업이 이뤄질 수 있다”며 “또한 이 지역은 해안가까지 지열을 버틸 수 있는 암석이 형성돼 있는 것으로 파악된다”고 설명했다.
탄소를 활용한 지열에너지는 탄소포집활용에서 경제성을 확보할 수 있는 참신한 아이디어로 여겨지지만 여기에도 난관은 있다. 그래스비 연구원은 “문제는 이렇게 획득한 지열에너지가 실생활에 활용될 수 있는 전력을 생산할 정도로 충분한 수준에 도달하지 못했다”고 말했다. 그러면서도 “하지만 고온 환경에 적합한 퇴적분지가 방대하게 형성된 만큼 향후 연구를 통해서 전력생산이 가능할 정도의 지열에너지를 확보할 수 있을 것으로 기대한다”고 덧붙였다.

●”CCUS는 기후위기에서 필연적인 기술, 글로벌 협력 중요“
칼 오지어 GSC 캘거리지소장이 사무실에서 인터뷰에 응하고 있다. 캐나다 캘거리=박정연 기자 hesse@donga.com
캐나다의 지질연구는 다른 나라보다 오랜 역사를 갖고 있다. GSC의 역사만 해도 거의 100년 전으로 거슬러 올라간다.

칼 오지어 GSC 캘거리지소장은 연구소가 축적한 방대한 자료와 설비, 그리고 캐나다 지역의 연구환경을 세계의 과학자들과 공유하고 싶다고 말했다. 탄소 포집과 저장, 활용 앞에 놓인 경제성 난관을 극복하기 위해선 국제 학자들 간의 협력이 필수적이라고 강조했다.

오지어 소장은 탄소 포집, 저장, 활용을 위한 연구는 마치 신종 코로나바이러스 감염증(COVID-19·코로나19) 사태에서 성사된 국제협력 연구와 같이 이뤄져야 한다고 비유했다. 그는 “감염병 사태에서 각국 과학자들은 국제 이니셔티브 등 협력기관을 구성하고 백신과 치료제 개발에 함께 몰두했다”며 “이러한 협력관계는 범용적으로 사용될 수 있는 백신과 치료제를 짧은 시간에 개발할 수 있는 원동력이 됐다”고 설명했다.

그는 또한 현재 CCUS 기술이 ‘과도기’에 놓여 있다고도 말했다. 기술이 주목받고 10년여 시간이 지난 가운데 탄소저감을 위한 다양한 방안들이 떠오르고 있기 때문이다. 오지어 소장은 “각 국 정부는 새로운 에너지 자원, 새로운 유형의 운송 수단 등 다른 탄소저감 해결책에 눈을 돌리고 있다”고 설명했다.

CRC에는 약 2억개의 광석 샘플이 있다. 방대한 양의 광석을 찾을 때는 지게차를 사용한다. 캐나다 캘거리=박정연 기자 hesse@donga.com
또 “하지만 이러한 방식은 탄소저감에 보탬이 될 수 있는 방법 중 일부일 뿐, 탄소 저장·포집·활용을 제하고 탄소저감에 대해서 이야기할 수는 없을 것”이라고 강조했다. 그는 “탄소배출량을 줄이기 위해 전기자동차를 사용하지만 전기자동차를 구동하는 전기를 생산하는 과정에선 탄소가 또다시 배출된다”며 “새로운 에너지 자원, 새로운 연료, 새로운 운송 수단에 대한 연구가 이뤄지는 동시에 필연적으로 발생하는 탄소를 처리하는 방안을 고민해야 한다”고 설명했다.

관련 기술이 경제성이란 난관을 뛰어넘기 위해선 국제 학계의 국경을 넘어선 협력이 중요하다고 재차 강조했다. 특히 한국에 대해선 “중요한 연구 파트너로 생각한다”고 말했다. 한국의 우수한 전문인력이 캐나다 연구기관에 축적된 방대한 자료를 연구하고 그 결과를 공유하면서 일종의 ‘윈-윈’ 관계를 구축할 수 있단 이야기다.

오지어 소장은 “GSC는 국제 학자들과 정보를 공유하기 위해 항상 협력적으로 나서고 있으며 CCUS 분야도 예외는 아니다”고 밝혔다. 이어 “특히 한국은 캐나다와 유사한 수준의 탄소중립 목표를 수립하며 정부가 탄소해결에 진지하게 임하고 있다”며 “한국 연구자들과의 연구협력은 몹시 중요하게 생각하고 있다”며 이같이 말했다.

GSC 전경
캐나다 지질조사국(GSC)의 입구. 캐나다 캘거리=박정연 기자 hesse@donga.com
국내 유관기관 또한 국제 협력에 적극적이다. 이효종 한국지질자원연구원 석유에너지연구센터 선임연구원은 “캐나다는 탄소 포집‧저장‧활용에 적합한 자연환경을 갖고 있는 한편 이를 연구할 인력에 대한 필요도가 높은 상황”이라며 “한국의 많은 과학자들이 캐나다에서 CCUS의 경제성을 확보하기 위한 연구에 참여하고 있다”고 설명했다.

이현석 한국지질자원연구원 석유에너지연구센터 책임연구원은 “각국이 목표로 하는 탄소중립을 이루기 위해선 국적을 넘어선 과학자들 간의 적극적인 협업이 중요하다”며 “실제 상업화 단계 이전 연구단계에선 이같은 협력이 자유롭게 이뤄지고 있다”고 전했다.

오지어 소장은 “GSC는 한국의 대표적인 지질연구기관인 한국지질자원연구원과 많은 협력을 하고 있지만 협력의 성과가 잘 알려지지 않은 측면도 있다”며 “한국은 대단히 훌륭한 협력자이며 한국과의 협업 성과가 인정받는 것은 멋진 일이다”고 말했다. 그의 사무실에는 자개로 만들어진 한반도의 광석지도가 걸려 있다.

[편집자주] 최근 국내는 물론 지구촌 곳곳에서 발생하는 기후재앙은 탄소중립을 향한 인류의 발걸음을 재촉하고 있습니다. 온실가스인 이산화탄소 순 배출량을 ‘제로’로 만드는 탄소중립 구현에 탄소 포집과 저장, 활용(CCUS) 기술은 필수적입니다. 배출을 줄이는 노력과 동시에 이미 배출했거나 배출하고 있는 탄소를 없애야 하기 때문입니다. 정부도 탄소중립을 핵심 국가전략기술로 꼽고 있습니다. 동아사이언스는 CCUS 연구개발(R&D)을 토대로 비즈니스까지 추진하고 있는 세계 각국 현장을 취재하고 CCUS 기술의 현주소와 국내 상황을 분석해 향후 CCUS R&D의 비전을 모색합니다.

※출처 : 동아사이언스 : 이 기사는 한국언론진흥재단의 지원을 받았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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