미국이 작년 3월 기준 금리를 인상하면서 본격화된 전 세계적인 금리 급등으로 글로벌 주택 시장이 냉각되고 있다. 2020년 코로나로 인한 경기 침체를 막으려는 초저금리 정책으로 ‘버블 논쟁’이 벌어질 정도로 치솟던 집값이 눈 깜작할 사이에 폭락세로 전환한 국가도 있다. 스웨덴, 캐나다, 호주, 뉴질랜드, 한국 등은 연간 10% 전후의 폭락을 기록했다. 뉴질랜드, 캐나다, 스웨덴은 블룸버그통신이 2021년 6월 집값 상승률, 소득 대비 집값 비율 등을 조사해 발표한 글로벌 주택 버블 순위 1~3위 국가였다.
금리 인상 진원지인 미국은 전년 동기 대비 0.2%의 소폭 조정에 그쳤다. 영국, 독일 등도 5% 전후의 하락 폭을 보였다. 금리를 내린 튀르키예는 사상 유례없는 집값 폭등세를 기록했다. 러시아의 우크라이나 침공으로 시작된 유가와 곡물 가격 폭등으로 나타난 초인플레이션을 잡으려는 글로벌 금리 인상이 집값에 준 충격이 국가별로 다른 이유는 뭘까?
◇변동 금리 의존도 높은 폭락 국가
연간 하락률이 10%가 넘는 집값 폭락 국가는 캐나다(-15.8%), 스웨덴(-14%), 뉴질랜드(-13.9%) 등이다. 집값 비싸기로 악명 높은 홍콩도 작년 집값이 15.6% 폭락했다. 한국은 한국부동산원의 실거래가 공동주택 가격 변동률(1월 기준)이 –14.5%다.
집값 폭락 국가들은 주택담보대출이 대부분 변동 금리이고 가계 부채 비율이 높다는 공통점을 갖고 있다. 미국의 투자은행 골드만삭스는 최근 ‘집값 더 하락할 수밖에 없는 이유’라는 보고서에서 집값 하락 폭이 큰 국가들은 주택담보대출(모기지)의 변동 금리 비율이 높다는 공통점이 있다고 분석했다. 한국(105.8%), 캐나다(106.9%), 뉴질랜드(98.1%), 홍콩(94.8%), 스웨덴(92.7%)은 GDP 대비 가계 부채 비율이 OECD 상위권이다. 한국경제연구원은 최근 보고서에서 “한국은 전세 보증금(1058조원)을 포함할 경우, 가계 부채 비율이 156.8%로 OECD 1위이며 주택담보대출의 변동 금리 비율이 76%나 된다”고 밝혔다. 최민섭 호서대학교 부동산자산관리학과 교수는 “상대적으로 가계 부채 비율이 높고 고정 금리보다 변동 금리 비율이 높은 나라는 금리 인상으로 이자 부담이 급격히 늘어나 급매물이 급증하는 데 상당한 영향을 미쳤고 이는 곧 집값 급락으로 이어졌다”고 말했다.
◇소폭 조정에 그친 미국과 영국
금리 폭등 진원지인 미국은 오히려 소폭 조정에 그쳤다. 미국은 기준 금리가 1년 사이에 0.25%에서 5%로, 모기지(주택담보대출) 금리가 2.8%에서 한때 7%대까지 치솟았다. 미국 부동산중개인협회가 발표한 2월 미국 기존 주택 중위 가격은 36만3000달러로 1년 전보다 0.2% 하락하는 데 그쳤다. 미국도 2021년에만 19% 폭등하는 등 집값에 버블이 끼여 있다는 평가를 받았지만, 금리 인상 충격에도 집값이 소폭 조정에 그친 이유는 뭘까. 우선 모기지의 90% 이상이 30년 고정 금리이다. 금리 인상에도 대출받아 집을 산 구입자들의 이자 부담이 늘지 않는다. 금리 인상으로 신규 수요는 줄지만, 기존 주택 소유자들이 급매물을 내놓지는 않는 이유다.
미국은 GDP 대비 가계 부채 비율도 리먼 쇼크 당시 100%보다 훨씬 낮은 70% 정도다. 집값이 소폭 하락하는 데 그친 영국, 프랑스, 독일 등도 가계 부채 비율이 낮고 주택담보대출의 고정 금리 비율이 높다. 미국 투자은행 골드만삭스는 최근 보고서에서 국가별 고점 대비 하락률을 예측했다. 뉴질랜드(-19%), 캐나다(19%), 스웨덴(17%) 등 가계 부채가 많은 국가들은 폭락하는 반면 가계 부채가 적은 프랑스(-4%), 미국(-5%)은 소폭 하락에 그칠 것으로 전망했다.
◇금리 인하 튀르키예 폭등
전 세계적인 금리 인상 속에서도 튀르키예는 2022년 8월 14%였던 기준 금리를 인하하기 시작했다. 올해 선거를 앞두고 경기 부양을 하려는 레제프 타이이프 에르도안 대통령의 요구 탓이다. 현재 기준 금리가 8.5%까지 내렸다. 거꾸로 금리 정책으로 화폐 가치가 폭락하면서 자본 유출과 초인플레이션이 발생했다. 작년 10월 물가 상승률이 85%까지 치솟았다. 화폐가치가 폭락하자 실물 자산 선호 심리가 폭발, 주택 투자 수요가 폭발적으로 늘면서 연간 집값 상승률이 153%에 달했다. 러시아 등 주변 국가의 부유층 이주 수요까지 몰려 집값 폭등을 가속화했다.
1990년대 고령화와 저성장으로 부동산 버블이 붕괴했던 일본도 집값이 급등했다. 일본은 경기 부양을 목적으로 -0.1%인 기준 금리를 유지했다. 주택 가격이 연간 8.99% 급등했다. 일본의 작년 토지 기준지가(7월 1일 기준) 조사 결과에 따르면, 전국 주택지 가격도 31년 만에 상승세로 전환했다. 싱가포르는 금리가 치솟았지만, 주택 공급 부족과 중국인 부유층의 이주 수요가 크게 늘어 연간 8.64% 올랐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