캐나다는 러시아에 이어 세계 두 번째로 넓은 국토를 가진 대국이자 자원이 풍부한 부국이다. 인구도 3800만 명이 넘어 강대국 조건을 두루 갖췄다. 그에 비해 유독 캐나다 군사력은 국력에 걸맞지 않게 초라하기 그지없다. 러시아와 북극해를 사이에 두고 마주 보고 있음에도 그간 미국 국방력에 사실상 무임승차했기 때문이다.
* 美 군사력에 ‘안보 무임승차’ 캐나다
캐나다는 냉전 시절부터 방공·해양 주권 보호를 거의 미국에 의탁했다. 방공작전은 미국이 주도하는 북미항공우주방위사령부, 일명 노라드(NORAD)가 관장한다. 노라드는 형식상 미국과 캐나다 양국 공군이 협력해 이룬 전력을 하나의 지휘체계로 운영하는 연합방공 시스템이다. 사실상 미국의 ‘원맨쇼’로 운영된 지 오래다. 캐나다 공군 전투기가 낡고 노후화된 탓에 베링해·북극해·북대서양 일대에서 문제가 발생하면 미 공군 전투기가 출격한다.
해안 방어도 미국이 도맡고 있다. 북미 해안은 동쪽으로는 러시아의 전략원자력잠수함(원잠), 서쪽으로는 중국 전략원잠으로부터 위협받는다. 해안선이 워낙 길어 다수의 대잠 전투함과 초계기가 필요하다. 캐나다 해군은 시늉만 할 뿐, 실질적으로는 미 해군이 초계 작전을 전담하고 있다. 태평양 방면 방어는 미 해군 제3함대, 대서양 쪽은 제2함대 담당이다. 극심한 전투함·잠수함 부족을 겪는 미국은 오래전부터 캐나다에 북미 대륙 방어에 실질적으로 기여하라고 압박해왔지만 캐나다는 꿈쩍도 않고 있다.
캐나다 군사력이 어느 정도 수준이기에 미국 의존이 이처럼 심할까. 세계 8위 경제대국인 캐나다군의 주력 전투기는 1982년 도입하기 시작한 구형 CF-18이다. 미군에선 오래전 퇴역한 F/A-18A/B 호넷과 동형 전투기다. CF-18은 도입 40년이 된 지금도 캐나다군 유일의 주력 전투기다. 당초 캐나다는 미국 주도의 통합공격기(JSF) 개발 사업에 참여해 F-35A 전투기를 도입할 예정이었다. 그러나 당시 야당이던 중도 좌파 성향의 자유당이 보수당 정부의 F-35 도입 사업을 엎어버리면서 무위에 그쳤다. 결국 캐나다는 40년 넘은 구식 전투기 몇 대만 보유한 채 미 공군의 ‘방공우산’에 사실상 기대어 사는 나라가 됐다.
캐나다 해군력의 실정도 크게 다르지 않다. 캐나다 해안선 길이는 세계에서 가장 길지만 해군력은 호위함 12척, 초계함 12척, 잠수함 4척이 전부다. 주력인 핼리팩스급 호위함은 4770t 중형 전투함이지만, 무장 면에선 어지간한 나라의 3000t급만도 못하다. 킹스턴급 초계함은 고작 970t급 소형함으로, 그 무장은 한국 해군 참수리급 고속정보다 약한 40㎜ 기관포 1문과 기관총 1정이 전부다. 캐나다는 북극해를 비롯해 태평양과 대서양의 광활한 바다를 지키는 임무를 사실상 미 해군에 떠넘겨왔다.
과거에는 캐나다의 안보 무임승차 전략이 통했다. 소련, 중국과 대결 구도에서 급한 쪽은 미국이었다. 미국은 부족한 군사력을 쥐어짜 자국은 물론, 캐나다의 하늘과 바다를 지켜야 했다. ‘미국 우선주의’를 부르짖던 도널드 트럼프 행정부 때 상황이 바뀌기 시작했다. 미국은 캐나다의 안보 무임승차를 비난하며 군사력을 증강하라고 강력히 압박하고 나섰다. 북미 대륙을 향한 러시아와 중국의 안보 위협이 심화되는 가운데 미군은 버락 오바마 행정부 시절 국방예산을 대거 삭감한 이른바 ‘시퀘스터(Sequester)’ 여파에 시달렸다. 트럼프 행정부는 “캐나다 영공·영해는 고사하고 미국 앞마당도 제대로 지키기 어렵다”고 주장했다. 이는 상당 부분 사실이었다. 오바마 2기 행정부 때 국방비가 대폭 삭감되면서 주요 전력 증강 사업이 취소되거나 미뤄졌다. 이 과정에서 기존 장비 수리 및 정비 일정도 늦춰져 미군의 전투기·전투함·잠수함 부족은 대단히 심각해졌다. 특히 크게 강화되는 중국과 러시아의 수중 전력으로부터 북미 대륙을 지킬 잠수함 전력이 크게 부족했다.
* “동맹국 잠수함 전력 강화” 미국 새 전략
4월 기준 미 해군의 공격원잠 수는 버지니아급 22척, 로스앤젤레스급 26척, 시울프급 3척을 합쳐 총 51척이다. 이 중 시울프급 2번함이 2021년 남중국해에서 미상 수중 물체와 충돌해 가동 불능 상태가 됐기에 현재 미 해군의 가용 공격원잠은 50척이다. 이 잠수함들은 번갈아가면서 정비·훈련·작전을 반복한다. 일단 정비에 돌입하면 1~2년은 도크에 들어가 있어야 한다. 미 해군이 실질적으로 ‘작전배치’ 상태로 쓸 수 있는 잠수함은 기껏해야 17척 정도다. 이 전력으로 러시아 전략원잠 12척과 순항미사일 원잠 10척, 중국 전략원잠 6척 등 28척의 핵무장 잠수함을 추적하고 대응해야 한다.
혈맹 영국이 대서양 방어를 일부 지원하지만, 영국의 공격원잠도 5척에 불과한 데다 가동률이 낮은 편이라 큰 도움은 못 된다. 미국이 핵 비확산 원칙을 스스로 깨면서까지 호주에 공격원잠을 쥐어주려 하는 이유가 이 때문이다. 향후 호주가 8~13척의 공격원잠을 보유하면 이 가운데 3~4척을 중국 전략원잠 대응 임무에 투입할 것이라는 판단이다. 핵심 동맹국으로 하여금 고성능 잠수함을 갖게 해 임무 부하(負荷)를 줄이겠다는 것. 이 같은 미국의 전략은 오랜 세월 안보 무임승차로 일관한 캐나다에도 적용된다.
냉전 말기 캐나다는 영국, 프랑스의 지원으로 북극해를 지킬 공격원잠 도입을 검토했다. 1987년 캐나다 ‘국방백서’에 처음 등장한 공격원잠 획득 계획은 냉전 종식을 확신하던 미국이 핵 비확산 원칙을 들고 나와 결국 무산됐다. 캐나다는 공격원잠 대신 영국의 구형 디젤전기추진 잠수함 업홀더급 4척을 들여와 빅토리아급이라고 이름 붙여 운용하고 있다. 빅토리아급은 수중 배수량 2400t급으로 꽤 큰 잠수함이지만 캐나다군에 도입된 후 제대로 활약하지 못했다. 빅토리아급은 온갖 결함으로 막대한 유지비가 드는 애물단지인 데다, 2004년 대서양 한복판에서 일어난 화재로 인명사고까지 발생했다. 사고 이후 캐나다는 큰돈을 들여 빅토리아급을 개량했지만 잠수함 성능이 크게 나아지지 않았다.
이에 따라 2017년 캐나다 의회에서 신형 잠수함 12척을 구매해 급변하는 안보 환경에 대응해야 한다는 주장이 나오기 시작했다. 정치권에서 표류하던 신형 잠수함 도입론은 최근 캐나다 국방부와 해군에 담당 부서가 신설되면서 급물살을 타고 있다. 그리고 이를 밀고 있는 인물은 놀랍게도 육군 장성인 웨인 D. 에어(Wayne D. Eyre) 대장이다.
* 韓 DSME 3000 vs 日 다이게이급
웨인 에어 당시 유엔군사령부 부사령관(오른쪽)이 2019년 6월 4일 한미동맹친선협 회로부터 ‘예영수(芮榮守)’라는 한국 이름이 적힌 족자를 선물받고 있다. 에어 장군 은 귀국 후 대장으로 진급해 2021년 캐나다군 국방참모총장에 임명됐다. [유엔군사령부 제공]
웨인 에어 당시 유엔군사령부 부사령관(오른쪽)이 2019년 6월 4일 한미동맹친선협 회로부터 ‘예영수(芮榮守)’라는 한국 이름이 적힌 족자를 선물받고 있다. 에어 장군 은 귀국 후 대장으로 진급해 2021년 캐나다군 국방참모총장에 임명됐다. [유엔군사령부 제공]
통합군 체제인 캐나다군은 육군·해군·공군사령부 위에 최고사령부가 있고, 그 수장이 국방참모총장(Chief of the Defence Staff)이다. 2021년 국방참모총장에 취임한 에어 대장은 화려한 해외 파견 근무 경력을 갖고 있다. 준장 시절 미 육군 제18공수군단 부군단장으로 근무했고, 중장 진급 후 미국의 전폭적 지지 속에서 비(非)미국계 최초 유엔군사령부(유엔사) 부사령관으로 한국에 부임했다. 에어 장군의 유엔사 부사령관 지명은 미 국방부 요청에 의한 것이었다. 에어 장군 역시 미국과 친분을 과시하며 적극적으로 임무를 수행했다. 그는 2019년 6월 이임하면서 한미동맹친선협회로부터 ‘예영수(芮榮守)’라는 한국 이름을 선물받았고, 근무지였던 경기 평택시의 ‘명예시민’이 되기도 했다. 에어 대장이 잠수함 도입 사업에 강력한 드라이브를 거는 이유는 혈맹 미국의 잠수함 부족 실정을 잘 알기 때문이다. 그는 3월 캐니다 오타와에서 열린 국방정책 참모회의에서 잠수함 도입을 최우선 과제로 추진할 것임을 천명하고, 자신이 해군을 대신해 잠수함 사업을 적극적으로 지지하고 있다고 밝혔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