지난해 봄 캐나다 동부 도시 퀘벡을 여행할 때 일이다. 점심 먹으러 향토 음식점에 들어갔다. 화장실을 쓰려고 일어났더니 어라? 화장실에 남녀 구분이 없었다. 잘못 찾아왔나 싶어 두리번거리는데, 남녀가 섞인 캐나다인 네댓 명이 화장실 칸 앞에서 줄을 섰다가 차례로 들어갔다.
그날 저녁은 고급 레스토랑을 방문했다. 15가지 코스 요리가 나오는 파인 다이닝 레스토랑이었다. 레스토랑이 고급이어서 화장실도 화려했으나 저런, 여기에도 남녀 구분이 없었다. 호화 레스토랑이 뭐하는 짓인가 싶었다. 낮의 화장실이 어색했다면 밤의 화장실은 당혹스러웠다. 정장 빼입은 신사와 드레스 차려입은 숙녀가 낮의 식당처럼 줄을 서 화장실에 들어갔다.
의문이 풀린 건 네 번째 들른 공용 화장실에서였다. 화장실 입구의 픽토그램이 그때야 눈에 들어왔다. ‘ALL-GENDER’라는 글씨 위에 세 사람이 나란히 그려져 있었다. 오른쪽 아기 기저귀 갈아주는 사람과 가운데 휠체어에 앉은 사람은 바로 이해가 됐다. 왼쪽 그림은 눈 비비고 다시 봐야 했다. 한 사람의 왼쪽은 치마 입은 모습이고 오른쪽은 바지 차림이었다. 남자도 여자도 아닌 사람, 혹은 남자이기도 하고 여자이기도 한 사람이 남자 여자와 함께 쓰는 화장실. 캐나다 공용 화장실의 정체는 ‘올 젠더 화장실’이었다.
한국에도 올 젠더 화장실이 두 곳 있다. 순천향대 서울병원과 성공회대에 올 젠더 화장실이 있다고 이은실 순천향대 병원 교수가 알려줬다. 병원에 화장실을 들일 때 악성 민원이 들어와 곤란했었다는 일화도 들려줬다. 한국에서 ‘공용 화장실’을 검색하면 ‘몰카’ ‘성범죄’ 같은 몹쓸 단어만 따라 나오는 현실에서 신선한 소식이었다.
지난 17일 대구에서 희대의 장면이 연출됐다. 시위도 아니고 축제가 열리는데 싸움이 일어났다. 보통 이런 경우 행사 주최 측과 경찰이 부딪히게 마련이다. 대구는 달랐다. 축제를 막는 공무원과 공무원을 말리는 경찰이 몸싸움을 벌였다. 해괴한 충돌의 발단은 대구퀴어문화축제였다.
홍준표 대구시장은 “퀴어축제 자체를 못하게 하는 게 아니라, 하더라도 도로 불법점거를 하지 말라는 것”이라고 뒤늦게 변명했지만, 지난 8일 SNS에선 “성소수자의 권익도 중요하지만 성다수자의 권익도 그에 못지않게 중요하다”며 퀴어축제 반대의 뜻을 분명히 밝혔었다.
지난 주말 뉴스를 보다가 홍준표 시장은 캐나다에 못 가겠다 싶었다. 화장실에서 뒷목 잡고 쓰러질까 걱정됐다. 토론토에서 열리는 퀴어축제는 캐나다 총리도 참가한 적 있는 캐나다 3대 축제다. 참, 캐나다는 성별을 다음과 같이 묻는다. Male(남성), Female(여성), Self-identify(자기 결정). 이 셋 중에서 골라야 한다. 성(Gender)은 두 개가 아니다. 세 개다.
(중앙일보 손민호 레저팀장)