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캐나다를 대표해 국제사회에 사과합니다.”
쥐스탱 트뤼도 캐나다 총리가 결국 고개를 숙였다. 최근 캐나다 하원에서 나치 부역자가 ‘전쟁 영웅’으로 둔갑해 의원들의 기립박수를 받은 사건을 놓고 책임을 통감한다는 뜻이다. 당시 트뤼도 총리 본인도 하원 본회의장에 있으면서 손뼉을 치는 모습이 사진에 찍혔으니 이런 망신이 따로 없다.
27일 영국 BBC에 따르면 트뤼도 총리는 이날 “의회와 캐나다를 아주 곤혹스럽게 만든 실수”라며 “캐나다를 대표해 깊은 사과의 말씀을 드린다”고 말했다. 이어 “그날 하원에 있었던 우리 모두는 정확한 정보를 알지도 못하면서 일어나 손뼉을 친 행위를 깊이 후회하고 있다”며 “그것은 수백만 홀로코스트 희생자를 기억해야 한다는 대의와도 완전히 어긋난 행동이었다”고 덧붙였다.
홀로코스트란 히틀러의 나치 독일이 제2차 세계대전 기간 저지른 유대인 집단학살을 뜻한다. 희생자는 약 600만명으로 추산된다.
사건은 지난 22일로 거슬러 올라간다.
러시아와 싸우는 우크라이나의 볼로디미르 젤렌스키 대통령이 캐나다 등 서방에 더 많은 군사지원을 호소하고자 캐나다를 방문했다. 그는 트뤼도 총리와 정상회담을 갖고 하원 본회의장에서 캐나다 의원들을 상대로 연설도 했다.
이 자리에는 앤서니 로타 하원의장의 특별한 초청으로 우크라이나계 캐나다인 야로슬라프 훈카(98)가 참석했다. 로타 의장은 젤렌스키 대통령과 캐나다 정부 요인 및 의원들에게 훈카를 소개하며 “제2차 세계대전에서 싸운 전쟁 영웅”이라고 불렀다. 젤렌스키 대통령은 물론 함께 있던 부인 올레나 젤렌스카 여사, 트뤼도 총리 그리고 캐나다 의원들이 일제히 기립해 그에게 뜨거운 박수를 보냈다.
그런데 알고 보니 훈카는 2차대전 당시 나치 독일을 위한 부대에 속해 싸웠다. 그 시절 우크라이나는 공산주의 소련(현 러시아)의 일부였다. 1941년 6월 나치 독일이 소련을 침공하자 우크라이나인들 중에는 ‘우리가 소련으로부터 독립하려면 독일을 도와야 한다’고 생각한 이가 제법 있었고 훈카도 그들 중 한명이었던 것으로 보인다. 우크라이나를 점령한 독일군은 이런 친(親)독일 성향의 우크라이나인 자원자들로 별도 사단을 창설해 소련군과의 전투에 투입했다.
훈카가 속했던 부대가 바로 그 사단이라고 한다. 해당 부대는 폴란드인과 유대인의 집단학살에 연루됐다는 의혹도 제기된 상태다.
이 사실이 공개되면서 캐나다가 발칵 뒤집혔다. 이스라엘과 세계 각국의 유대인 단체에서 비난이 빗발쳤다. 결국 훈카를 하원으로 초청한 로타 하원의장이 모든 책임을 지고 사임했다. 트뤼도 총리는 “이번 사안은 전적으로 하원의장의 책임”이라고 말했다. 하원의장이 사퇴한 만큼 이제 책임 공방은 그만 끝내자는 뜻으로 풀이된다.
하지만 캐나다 야권은 트뤼도 총리가 직접 책임을 져야 한다는 입장이다. 야당인 보수당 피에르 폴리에브 대표는 “캐나다 역사상 최악의 외교참사”라며 트뤼도 총리를 향해 ”기자들과의 문답을 통해 사과할 게 아니라 직접 하원에 와서 의원들이 보는 가운데 정식으로 사과하라”고 촉구했다.로 드러났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