중학교를 마치고 캐나다로 유학을 떠난 아이. 그 이유는 입시 위주 한국교육에 적응하지 못해서였다. 집안의 든든한 지원조차 받을 수 없는 형편임에도 불구하고 어쩔 수 없이 선택한 유학길.
그로부터 16년. 그동안 말로는 다할 수 없는 수많은 역경과 도전이 반복됐다. 그 주인공 ‘한겨레’ 양이 드디어 박사학위를 마치고 자전거 여행길에 올랐다.
그는 “인생의 절반을 보낸 캐나다를 떠나면서 그동안 거쳐온 장소들과 소중한 사람들을 만나고, 이 큰 나라를 직접 페달을 밟으며 돌아보고 천천히 인사를 하고자 하는 나의 마음이 이번 여행의 동기”라고 말했다.
<캐나다 몬트리올>~<미국 뉴멕시코주 Los Alamos>까지 4,000km를 홀로 달리며 생각하는, 또 하나의 새로운 여행 중 틈틈이 기록한 여정 첫날을 소개한다.
먼길 떠나는 자는 늘 분주할 수밖에 없다. 나 역시 출발 전날 밤 이곳저곳을 돌아다니며 사람들을 만났다. 그동안 함께 했던 이들을 가슴에 담고 싶었다. 작별 인사는 아쉽기만 했다. 귀가 후 짐 정리를 다 하고 나니 새벽 2시. 시작부터 계획수정이 불가피했다. 새벽 6시 하려던 출발계획은 기상 시간으로 바뀌었다.
여정의 첫날. 아침 식사는 부대찌개. 전날 몬트리올에서 카페를 운영하는 친한 친구 Lin이 싸준 것이었다. 고마운 마음으로 든든하게 챙겨 먹었다.
짐을 챙겨 집 밖을 나서니 지난 3달 동안 살았던 집주인 George 가 나를 기다리고 있었다. 머문 기간은 짧았지만 그 동안 꽤 많은 이야기를 나누었다.
드디어 모든 채비를 마친 시간은 오전 7시 20분. 출발 하자마자 새로운 적응이 필요했다. 처음으로 가방과 텐트를 풀로 장착한 자전거를 올라타는 것부터 끄는 것이 쉽지 않았기 때문이다.
자전거 뒤쪽에 짐이 실린 만큼, 평소와 다른 느낌이었다. 무게 중심이 훨씬 뒤로 옮겨져서 도로 턱을 내려갈 때, 뒷바퀴 쪽이 약간 비스듬한 상태로 자전거가 옆으로 완전히 넘어 갈 뻔 하기도 했다.
출발! 몬트리올이여 안녕
몬트리올의 자전거 루트로 유명한 Lachine canal 트레일을 따라 자전거를 타는 것으로 나의 자전거 여행은 막이 올랐다.
시작부터 바람이 맞은편에서 강하게 불어 속도 내기가 힘들었다. 하지만 조급한 마음을 갖지 않기로 했다. 느리더라도 꾸준한 속도로 갈 수 있는 나만의 속도를 찾자고 생각했다.
그동안 수많은 경험을 한 나였지만 장기간 자전거 여행은 생전 처음이다. 따라서 내 페이스를 찾는 것이 중하다고 생각했다. 그때까지는 힘이 들고 안 들고와는 상관없이 한 시간에 5 분은 꼭 쉬어가기로 운행 계획을 세웠다.
아침에 George 가 준 팁이 있다. 바로 최대한 일정한 속도로 페달을 밟으려고 노력하라는 것. 또, 자전거 여행을 많이 한 친구 Antoine이 얘기해준 은근히 미끄러워서 넘어지기 쉬운 기찻길을 건널 때는 조심하라는 말을 기억하며 페달을 밟았다.
나는 자전거를 달리며 온몸으로 자연을 느꼈다. 내 얼굴을 스치는 공기, 옆에 흐르는 강, 파란 하늘과 그 아래 길게 난 자전거 트레일까지 모두 만끽하며 정말 행복한 마음으로 바람을 뚫고 나갔다.
이 날 가장 기억에 남을만한 트레일인 Soulanges canal trail을 타고 갈 때는 정말 기분이 날아갈 것 같고 행복감이 넘쳐 흘렀다.
출발한 지 3시간 정도가 지나자 미세하게 다리근육이 슬슬 타오르는 느낌이 들었다. 나에게 이런 현상은 힘든 것이 아니었다. 더욱 기분이 좋았다. 격하게는 아니지만 끊임없이 움직이니 물을 계속 마시는데도 화장실을 9시간 동안 한번 밖에 가지 않았다.
St.Zotique 라는 타운을 지나 계속 자전거를 타니 캐나다 퀘벡 주의 자전거 트레일인 Laroute verte 가 끝나고 온타리오 주로 접어들어 Waterfront trail 에 오르게 되었다.
이미 80km 이상 자전거를 탄 상태에서 남은 20km는 이 Waterfront trail 에서 탔는데 바람이 어찌나 강하게 불던지 막바지에 가서는 체력이 급속도로 떨어졌다.
무릎에 약간 무리가 오는 것 같고, 엉덩이에도 통증이 오기 시작했다. 하지만 속도를 천천히 일정하게 내며 나아갔다.
내가 모험을 갈구하는 이유는?
내가 틈만 나면 이런 식의 모험을 갈구하는 이유는 그 모험의 모든 순간을 깨어있는 의식으로 느끼고 싶기 때문이다. 무엇보다 그 과정을 통해 나 자신과 주변에 대해 더 깊게 배우는 통로를 경험하고 싶다.
깊은 통로는 새로운 경험을 시도하며 길고 힘들 수 있는 여행을 할 때 발견하기 쉽다 (인생의 절반인 16년이라는 시간을 보낸 캐나다를 떠나면서 내가 그동안 거쳐온 장소들과 소중한 사람들을 만나 인사하고, 이 큰 나라를 직접 페달을 밟으며 돌아보고 천천히 인사를 하고자 하는 나의 마음도 이번 여행의 동기다.)
이제 고작 단 하루 자전거를 탔다. 따라서 내가 잘못 판단한 것 일수도 있다. 그러나 제법 강한 바람이 불고 갈 길이 멀어 몸이 꽤 지친 와중에도 히말라야 등 고산 트레킹이나 우리나라 국토대장정에 비하면 이 정도 육체의 피곤함은 정말 아무것도 아니라는 생각이 계속 들었다.
자전거 여행 중엔 가는 길에 물도 있고 화장실도 있다. 산소도 많아 고산병 걱정할 필요도 없고, 숨쉬기도 좋고, 물도 벌컥벌컥 마실 수 있다,
GPS가 있어서 길 잃어버릴 걱정 없다, 차가운 빙하 위에서 벌벌 떨며 잘 상황도 일어나지 않는다.
필요하면 아무 때나 카톡, 메신저, 전화 문자로 가족 친구들과 연락 할 수 있다, 가다가 타운에 멈춰서 음식과 음료수도 사 먹을 수 있다,
예전에 어려운 경험을 했기에 그 경험들이 이렇게 나의 생각과 태도에 큰 영향을 끼친다는 사실을 새삼 깨닫게 되었다.
물론 오늘이 첫 날이고 날씨도 좋고 하니 이 자전거 여행이 쉽게 느껴지는 것일 수도 있다. 하지만 아무리 비가 오거나 바람 불어도 빙하 위에서, 산소가 부족한 고산에서 등산하고 자는 것에는 비교할 수 없다는 생각은 변하지 않을 것 같았다.
내일부터 날씨가 흐리고 비도 온다는데 이 생각이 어떻게 변할지 궁금해진다. 그리고 내가 이 여행을 통해 또 어떤 것을 관찰하고 깨닫게 될지 가장 기대가 된다.
여행의 큰 그림과 루트는 짜 놓았다. 그러나 매일 얼마를 달리고, 어디서 묵을지 까지는 정해놓지 않았다. 그 날의 컨디션과 일어나는 일들에 따라 조정할 수 있도록 유연한 일정을 해가기로 했기 때문이다.
자전거여행 첫 날은 총 105km를 달려 Lancaster에 있는 Glenngarry campground 에 도착했다.
캠핑장에 도착해서 텐트를 치고 샤워를 하고 난 후 화장실에서 핸드폰과 자전거 라이트 충전을 했다.
바지락 칼국수를 끓여 정말 맛있게 먹었다. 피곤이 풀리는 듯 했다. 천국에서 신선 놀이 하듯 풀밭에 누워 바람과 하늘을 감상하며 아름다운 첫날을 마무리 했다.
겨레야! 첫날부터 너무 행복했어.
=====================================
‘한겨레’ 1988년생 (여)
*캐나다 토론토대학교 물리학과 학사
*캐나다 맥길대학교 지구 및 행성과학 박사
*미국 로스앨러모스 연구소(LANL) 포닥과정 8월 시작예정
*히말라야 트레킹 6번
*국토대장정 (해남에서 임진각까지)
*토론토에서 철인삼종
*키르키스스탄 오지탐험 (방송사 동행)
*태권도 5단, 3급 사범자격증
*축구선수