한국 당뇨 보험, 비만 많은 캐나다 통계로 만들었다고?

2018년 4월부터 올해 상반기까지 14만명이 넘게 가입한 A보험사의 한 종합보험 당뇨 특약은 캐나다의 당뇨병 발생률을 토대로 해서 보장 조건, 보험료 등을 정했다.

국민건강보험공단 등이 보유한 국내 데이터를 이용할 수 없었기 때문이다. 한국인과 캐나다인은 인종적 특성, 식생활 등에서 유사성이 떨어진다. 특히, 당뇨병과 높은 상관관계를 가진 비만율은 현격한 차이가 난다.

2021년 경제협력개발기구(OECD) 보건 통계에 따르면, 한국의 과체중 및 비만 인구 비율은 33.7%인데 캐나다는 59.8%에 달한다. 2018년 11월부터 판매돼 6만2000여 명이 가입한 B보험사 치매보험의 파킨슨병 보장 특약은 대만의 파킨슨병 발생률 데이터를 사용했다. C보험사의 종합보험은 뇌출혈 발생률을 일본, 홍콩, 영국의 데이터로 추정했다.

국내 의료 데이터 활용은 지난 2014년부터 허용됐다가 2017년 10월 중단됐다. 개인 신상을 알 수 없도록 처리한 자료지만, 개인 정보 보호를 강화하고 본인 동의를 받아야 한다는 논란이 불거졌기 때문이다.

3년 넘게 금지됐던 공공 의료 데이터 활용은 개인정보보호법 등이 시행되면서 지난 7월부터 가능해졌지만, 속도를 내지 못하고 있다. 3조4000억건에 달하는 국내 최대의 의료 데이터베이스를 보유한 건보공단이 반대하고 있기 때문이다.

◇건보공단, 의료 데이터 보험사 제공 거절

건보공단은 지난달 14일 개최한 ‘자료제공심의위원회’에서 5개 보험사(한화생명, 교보생명, 현대해상, 삼성생명, KB생명)의 공공 의료 데이터 제공 요청 6건을 모두 거부했다.

개인 식별을 할 수 없도록 처리한 공공 의료 데이터 활용이 가능해진 지난 7월 이후 첫 요청이었는데 무산됐다. 보험사들은 “공공 의료 데이터 활용을 허용해줘야 국내 사정에 맞는 보험 상품을 개발할 수 있고, 보험 가입자들에게도 이익이 된다”고 했지만, “(질병 등에) 취약한 계층을 골라내 보험 가입에 제한을 두기 위한 목적일 수 있다”는 반대론에 막혔다.

해외 데이터 활용한 보험 사례
해외 데이터 활용한 보험 사례

건보공단과 달리 건강보험심사평가원은 의료 데이터 활용을 허용하고 있다. 지난 7월 6개 보험사가 요청한 공공 의료 데이터 활용을 승인했다. 심평원은 진료 정보, 의약품 정보 등 349개 데이터베이스를 가명(假名)으로 처리해 제공한다.

하지만 심평원만으로는 부족하다는 것이 보험업계의 입장이다. 건보공단 자료와 달리 환자가 특정 약물을 복용하면서 병세가 달라지는 추이 등을 확인할 수 있는 추적 관찰 데이터가 빠져있기 때문이다.

보험업계는 건보공단이 보유한 국내 의료 데이터를 활용해서 심·뇌혈관 질환 관련 보험 가입이 힘들었던 고혈압 환자 등 그동안 보험 가입이 쉽지 않았던 취약 계층 전용 상품이나 인공수정· 체외수정과 같은 난임 치료를 보장하는 난임 보험, 소아비만 동반 질환 보험 등 새로운 보험 상품 개발을 준비 중이라 건보공단의 자료 제공이 절실하다는 입장이다.

한 보험사 관계자는 “건보공단 심사 문턱을 넘지 못하면 이런 노력은 다 물거품이 될 것”이라고 말했다.

◇의협, 건보공단 노조, 시민단체 등 반대

대한의사협회 등 의료단체, 참여연대 등 일부 시민단체, 건보공단 노조는 보험사의 공공 의료 데이터 활용에 반대한다. 개인 정보가 유출될 우려가 있고, 특정 질병에 걸린 적이 있거나 발병 위험이 높은 집단을 보험사들이 구분해 차별할 우려가 있다고 주장한다.

대한의사협회는 “공공 의료 데이터 제공은 국민 건강권 보호 차원에서 전혀 보탬이 되지 않는다”고 했다. 건보공단 노조는 “국민 의료 데이터를 보험사의 이윤 극대화를 위한 상품 개발에 활용하라고 내주면 안 된다”는 입장이다.

◇미국, 일본 등은 적극적 활용

주요 국가들은 공공 의료 데이터 활용에 적극적이다. 미국에서는 보험사가 의료 데이터를 분석해 헬스케어 서비스를 개발했다. 핀란드는 정부가 국민들의 모든 의료 기록을 전산화한 시스템을 관리하고 익명 처리한 정보를 민간기업 등이 활용할 수 있게 한다.

일본은 의료데이터센터(JMDC)에서 보험사에 정보를 제공한다. 하지만 건보공단은 제약사, 의료 기기 업체 등 의료 관련 산업에는 데이터를 제공하고 있지만, 보험업계에는 문을 닫아 걸고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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