퀘벡주 주정부가 주의원 취임선서 시 요구되는 군주에 대한 충성서약을 155년 만에 폐지하는 법안을 6일(현지시간) 주의회에 제출했다고 미국 일간 워싱턴포스트(WP)가 전했다.
WP에 따르면 현재 퀘벡주 주의회 의원들은 취임 선서의 일부로 ‘캐나다 국왕 찰스 3세’에 대한 충성서약을 해야만 한다. 이는 1867년 ‘영국령 북아메리카법’이라는 이름으로 캐나다 연방헌법이 처음으로 공포됐을 때부터 내려온 의무사항이다. 찰스 3세는 지난 9월 세상을 떠난 엘리자베스 2세의 뒤를 이어 영국, 캐나다, 호주, 뉴질랜드, 자메이카 등을 포함한 영연방 왕국 15개국의 군주가 됐다.
퀘벡주의 자치를 주장하는 ‘퀘벡 미래연대’ 소속 프랑수아 르고 주총리가 이끄는 보수파 연립이 10월 선거에서 압승을 거뒀고 주의회에서 다수파여서 ‘충성서약 폐지’ 법안 자체는 통과될 것으로 전망된다.
주정부 내각에서 ‘민주적 기관들 담당’ 등 업무를 맡은 장-프랑수아 로베르주 장관은 6일 법안을 의회에 제출하면서 “자랑스럽다”며 “(군주 상대 충성서약 폐지 법안을 제출하는) 이 의무를 갖게 되어 행운”이라고 말했다.
이 법안의 내용은 특정 직책의 공직자가 취임할 때 반드시 군주에 대한 충성서약을 하도록 한 캐나다 연방헌법 제128조를 개정해 “퀘벡에는 적용되지 않는다”는 조항을 추가하자는 것이다.
하지만 캐나다 연방헌법에 규정된 사항을 주법으로 뒤집을 수는 없다는 지적에 따른 위헌 논란도 일고 있다.
오타와대 법학전문대학원의 피에프 티보 부학장은 캐나다 연방헌법 제128조는 캐나다의 모든 주에 적용된다”며 “만약 헌법 제128조를 개정하려면, 개헌을 해야 한다. 일개 주가 일방적으로 할 수는 없다”고 말했다.
지난달 프랑수아 파라디 퀘벡 주의회 의장은 주의원 당선인 각각이 반드시 현행법에 따라 취임 선서를 해야 한다고 못박으면서, 이에 따르지 않는 주의원 당선인들을 주의회 경비대장이 의사당에서 추방할 권한이 있다고 말했다.
이어 지난주에는 퀘벡 분리주의 정당인 ‘퀘벡당’ 소속 주의원 당선인 3명이 군주 상대 충성서약을 끝까지 거부했다가 실제로 주의회 의사당 입장이 봉쇄되는 일이 있었다.
퀘벡당 당수인 폴 생트-피에르 플라몽동은 군주에 대한 충성서약을 의무화한 현행 선서 의례가 “불합리하다”며 “말도 안 된다”고 기자들에게 말했다.
이에 앞서 다른 퀘벡 분리주의 정당인 ‘퀘벡 연대’ 소속 의원 11명도 한동안 선서 거부 입장을 밝혔다가 나중에 비공개로 선서를 한 후 취임했다.
퀘벡주의 ‘충성 서약 폐지’ 법안에 대해 캐나다 연방정부가 제동을 걸 계획이 있느냐는 WP의 질의에 연방총리실 공보실 관계자는 즉답하지 않고, 쥐스탱 트뤼도 연방총리가 10월에 한 발언을 참고해 달라고 말했다.
당시 트뤼도 총리는 오타와에서 기자들과 만나 “(의원 취임)선서는 (퀘벡 주의회의 공식 명칭인) 국회와 연방의회가 권한을 가진 문제라는 점을 이해해야 한다”며 퀘벡주 의원의 선서 절차를 어떻게 할 것인지 결정할 권리가 퀘벡주 의회에 있다고 말했다. 이어 연방의원들의 군주 상대 충성서약을 폐지할 계획은 없다고 덧붙였다.
프랑스어권인 퀘벡 주의회의 공식 명칭은 ‘퀘벡 국회’로, 프랑스와 똑같이 ‘국회'(Assemblee nationale)라는 표현을 쓴다.
퀘벡주의 ‘충성서약 폐지 추진’ 움직임은 퀘벡 분리독립 주장과 함께, 캐나다 전역에서 조금씩 세를 불려 가고 있는 군주제 폐지 주장을 반영한 것이다.
다만 여론조사에서 캐나다의 군주제 지지율은 하락중인 것으로 나타나고 있으나, 군주제 폐지 추진은 매우 까다로운 일이다.
캐나다가 군주제 폐지를 추진하려면 연방의회 상·하원 양원과 15개 주 중 10개 주의 주의회가 동의해야 하는데다가, 원주민 부족들과 군주 사이에 맺어져 있는 조약들을 재협상해야 하기 때문이다.
트뤼도 연방총리는 9월 엘리자베스 2세가 별세한 후 영국 방송 ‘글로벌뉴스’ 인터뷰에서 군주제 폐지에 대한 질문을 받고는 “집중해야 할 (다른) 큰 사안들이 무척 많다”며 까다로운 절차 등을 들어 부정적 의견을 밝힌 바 있다.